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52 / 덕경편 52장(2/3)
우리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러다 팍삭 넘어지기도 하고, 힘겨워 주저앉기도 하고, 기진맥진 근근이 걸음을 옮기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고단한 여정이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 생각하면 참으로 허망한 한 생이 아닌가요.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근원을 생각합니다. 내가 태어난 곳, 내가 돌아갈 곳, 도의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안식을 취해야 합니다. 어떻게? 방법이 뭐냐고요? 이렇게요!
입을 다물고
문을 닫으면
평생 우환이 없을 것이다.
우선 몸의 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구멍이라니요? 뜬금없게시리. 네, 말 그대로 구멍입니다. 구멍 중에 가장 큰 구멍인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저도 '한수다'합니다만, 혼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구멍'이 막히니 내면이 한결 정돈이 되었어요. 입에 곰팡내날 지경일 때도 있지만, 여하간 무의미한 말을 계속하면 컵 속 내용물이 쉴 새 없이 휘저어져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게 뿌연 상태가 되는 것과 같지요. 그 입은 결국 욕망의 입 아닌가요? 두려움의 입 아닌가요? 험담의 입 아닌가요? 열어서 좋을 게 거의 없지요.
문은 또 뭔가요? 역시나 세상을 향한 욕망의 문, 어리석음의 문입니다. 눈, 귀, 코 등 감각기관의 문으로 인해 우리는 평생 끄달리며 고달프죠. 감각의 달콤한 유혹에 사로잡혀 하염없이 바깥 세상에 넋을 빼앗기지요. 지인이 그래요. 여자 좋아하는 게 마치 평생 고문 당하는 느낌이라고. 그 깡패같은 녀석에게서 언제나 놓여날 수 있을지 한숨이 난다고. 여자라고 다를 바 없죠. 남자 좋아하는 거 말이에요.
사는 동안 드글드글한 욕망에서 헤어나질 못하니 일이 끊이질 않습니다. 걱정근심이 쌓일 수 밖에 없지요. 저는 아이들을 공짜로 키웠습니다. 집구석이 엉망이니 두 아들 모두 15살에 집을 나가버렸으니까요. 15살 이후론 학비는 고사하고 먹이지도 입히지도 않았으니 여하간 돈이 굳었지요.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닌 걸로 아는데, 언제 보니 대학도 가고 밥벌이도 하고 있더라고요. 돈 벌어서 저한테 매달 용돈도 주고요.
입을 열고
일을 벌이면
평생 헤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애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제 길을 갔는지도 몰라요. 지금도 어떻게 사는지 잘 모릅니다. 알려고도 안합니다. 말해주는 것만 듣지 묻지는 않아요. 이웃집 청년들 대하듯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요. 만약에 제가 끼어들었다면, 입을 열고 일을 벌였다면 그 총체적 난국에서 엉망진창이 되어 더 오랫 동안 헤어나지 못했을 것 겁니다. 저를 막아두고 근원의 힘이 보살핀 거였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 이제 근원 자리를 찾아 쉬기로 해요. 일이 어떻게 엉망이 되었든, 관계가 얼마나 틀어졌든, 그래서 죽도록 절망을 하건 모든 것에서 한 발 물러나 내 근원의 섭리를 의지하여 과감히 놓아보기로 해요. '어머니' 품에 안겨 일이 되어감을 느긋이 지켜 보아요. 노자는 그것을 '무위'라고 하고 예수는 '순종'이라고 말하지요.
내일은 어떻게 하면 늘 근원과 함께, 도와 함께,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제 52 장
세상은 시작이 있는데
그것이 세상의 어머니가 되었다.
어머니를 보면
그 자녀를 알 수 있다.
자녀를 알고
다시 그 어머니를 받든다면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입을 다물고
문을 닫으면
평생 우환이 없을 것이다.
입을 열고
일을 벌이면
평생 헤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을 볼 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하고
부드러움을 받드는 것을 강함이라 한다.
지혜의 빛으로 밝음에 이르면
자신에게 어떤 재앙도 남기지 않으니
이것을 영원한 배움이라고 한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580] 하루보듬 도덕경 (52/2장) 막으면 살고 열면 죽는다|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