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51 / 덕경편 52장(1/3)
저는 백신 미접종자라 원래도 혼밥족인데 이제는 아주 '공인혼밥족'이 되었습니다. 어제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되레 맘 편하고 떳떳하더라구요. 나라에서 혼자 먹으라고 해서 혼자 먹는 거니까요.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참에 다잡고 수행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 도덕경 52장은 마침 수행장입니다.
수행이 무엇입니까. 왜 합니까. 정신을 정화하고 마음을 닦아 근원에 닿으려고, 신적 합일을 이루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도덕경을 공부하는 우리는 '도적합일'이라고 해야겠군요. '보이는 삶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을 깨달아 그 힘에 접속하여 참되고 풍성한 삶을 살고자 하는 거지요. 읽어보겠습니다.
제 52 장
세상은 시작이 있는데
그것이 세상의 어머니가 되었다.
어머니를 보면
그 자녀를 알 수 있다.
자녀를 알고
다시 그 어머니를 받든다면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입을 다물고
문을 닫으면
평생 우환이 없을 것이다.
입을 열고
일을 벌이면
평생 헤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을 볼 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하고
부드러움을 받드는 것을 강함이라 한다.
지혜의 빛으로 밝음에 이르면
자신에게 어떤 재앙도 남기지 않으니
이것을 영원한 배움이라고 한다.
첫 단락에서 움찔하는 분들 계시죠? '어머니를 보면 그 자녀를 알 수 있다'는 구절 때문에. 저만 그런가요? 모두 훌륭한 어머니, 부모들이신가요? 자녀 속에 들어있는 나의 DNA가 자랑스러우신가요? '너를 보니, 뵌 적은 없지만 네 어머니가 참 훌륭하실 것 같다' 이런 소리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저는 들어본 적 없네요. 잘못된 탓은 듣겠지만. ㅎㅎ
어찌됐건 이런 인간적인 모습은 잠시 접어두자구요. 노자가 말하는 어머니와 자식은 그런 차원이 아니니까요. 네, 근원에 대한 것이죠. 어머니는 근원, 여기서는 도를 의미하며, 자녀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뜻하는 거지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도덕경에서는 도로 세상이 창조되었고, 세상 만물에는 도가 깃들어 있다, 이 말을 '어머니를 보면 그 자녀를 알 수 있다'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지요.
세상은 시작이 있는데
그것이 세상의 어머니가 되었다.
어머니를 보면
그 자녀를 알 수 있다.
자녀를 알고
다시 그 어머니를 받든다면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만물 속에는 근원이 되는 도가 깃들어 있을 수밖에요. 자녀를 알고 다시 그 어머니를 받든다는 게 그런 뜻이지요.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안 보이는 배후의 힘을 직관적으로 통찰한다는.
하늘의 연이 저 스스로 날아오른 줄 알면 정말 착각이죠. 자신의 근원에 연결된 얼레의 존재를 아는 연은 기고만장하지 않아 위태롭지 않지요. 연이 저 혼자 우쭐대며 더 높이 날겠다고 얼레에 매인 줄을 끊어버리면(끊을 수도 없지만) 그 순간 바로 추락하고 말겠지요.
신적 합일, 도적 합일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아는 일입니다. 연이 얼레의 존재를 알고, 얼레와 함께 있을 때 온전한 연이듯이요.
세상 제일 바보가 신은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부모없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과 같지요. 신을 '있다 없다'라는 인간의 이분법 언어 속에 넣었기 때문에 자가당착이 일어난 거예요. '도가도 비상도'라고 했잖아요. 도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죠. 언어 '너머'의 일이지요.
신을 뭐라고 부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그건 언어니까요. 언어는 이 세상의 도구니까요. 저는 기독교인입니다만, 도라고 하든, 하나님이라고 하든, 참나라고 하든, 순수의식이라고 하든 모든 존재는 배후의 근원적 존재로 인해 태어났고, 개별 존재 안에서 그 근원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사람 안에서 그 근원을 찾아가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이지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온다고해서 그 물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수도관으로 연결된 공급 근원이 있잖아요. 수돗물이 나오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알고, 연이 얼레의 존재를 찾아가는 것이 사람으로 치면 곧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입니다.
종교(宗敎)의 '종(宗)' 자는 근원, 근본이란 뜻이지요. '근본에 대한 배움'이 종교입니다. 사람으로서 근본 공부는 무엇인가요?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거지요. 붓다의 고행이 그랬고, 공자의 '위학' 역시 자기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요.
그러니 무조건 돈 많이 벌게 해 달라고, 우리 애 좋은 대학 가게 해 달라고,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처님한테 빌어봐야 소용없어요. 그런 거 하는 게 종교가 아니니까요. 그런 기복과 종교는 번지수부터 틀렸어요.
오늘 말이 길었네요. 미안합니다.
내일 다시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