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약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라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53 / 덕경편 52장(3/3)

by 신아연


52장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그러나 실재하는 힘, 나를 진정한 나로 살게 하는 힘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연이라면 얼레의 존재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지요.


왜 얼레를 찾아야한다고 했지요? 그래야 연이 온전해지니까요. 얼레와 함께 더 높이 날 수 있으니까요. 미운오리새끼가 백조로, 애벌레가 나비로 되는 참다운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존재의 본 모습이니까요. '참나'니까요.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남이니까요.


그래서 어제 어쩌라고 했지요? 입을 다물라고 했지요. 영양가 없는 말,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그치고 입을 다물면 타인과 부딪혀 실수할 일이 적고 자신과 대화를 시작하게 됩니다. 내면을 돌아보게 되는 거지요.


또 한가지는 뭐였지요? 욕심의 문을 닫으라고 했지요. 불교적으로는 탐진치(瞋癡)의 불을 끄고 열반에 드는 거지요. 열반이란 말은 불을 끈다는 뜻이잖아요. 물론 한꺼번에 이룰 수야 없지요. 원리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평생을 두고 해야 하는 일이지요. 부처님도 500생 만에 완전한 열반에 드시지 않았습니까.


오늘은 마지막 구절을 통해 참나를 찾아가는 영원한 여정을 배웁니다.


작은 것을 볼 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하고

부드러움을 받드는 것을 강함이라 한다.

지혜의 빛으로 밝음에 이르면

자신에게 어떤 재앙도 남기지 않으니

이것을 영원한 배움이라고 한다.


여기서 작은 것이란 존재의 내면을 의미합니다. '밝음'이란 말 속에서 힌트가 있습니다. 밝음이란 곧 성찰을 의미합니다. 성찰은 외부의 눈, 감각기관의 눈으로는 할 수 없어요. 오직 내면의 눈으로, 다른 말로 깨달음에 의해 가능합니다. 도를 볼 수 있는 눈은 내면성찰을 통해 길러지는 것입니다. 입을 다물고 욕망을 줄인 후 내면성찰을 하라는 뜻으로 연결될 수 있겠지요.


다음은 부드러움입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이란 뜻이라기 보다 부드러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진정으로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노자연구의 석학 야오간밍은 '자신이 유약할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유약함을 지켜내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드러움이, 유약함이 결국 이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도가 이깁니다. '이긴다'는 말이 거슬린다면 '도가 살 길이다, 일을 이루는 길이다'로 이해하면 될테지요. 물을 보세요. 물은 어디에나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이 자신을 낮추며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지만 물의 그 유연함과 부드러움은 견고한 바위를 뚫고 생명을 낳는 근원이 되니 이보다 더 강한 것이 있을까요.


마음 가난한 사람, 부드러운 사람, 유약한 사람이 궁극의 빛을 볼 것입니다. 근원의 힘에 의지해 일을 이룰 것입니다. 그 일이란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요. 생명력을 꺼뜨리지 않는 일이지요. 자신 안에서, 그리고 나와 같은 근원에서 태어난 상대 안에서 좋은 것을 찾아 북돋워 주는 사람에게 재앙이 있을 수 없지요. 그런 사람은 도의 품에서 영원히 자유롭고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이 노자 말씀입니다.


52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제 52 장


세상은 시작이 있는데

그것이 세상의 어머니가 되었다.

어머니를 보면

그 자녀를 알 수 있다.


자녀를 알고

다시 그 어머니를 받든다면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입을 다물고

문을 닫으면

평생 우환이 없을 것이다.

입을 열고

일을 벌이면

평생 헤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을 볼 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하고

부드러움을 받드는 것을 강함이라 한다.

지혜의 빛으로 밝음에 이르면

자신에게 어떤 재앙도 남기지 않으니

이것을 영원한 배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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