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다면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54 / 덕경편 53장(1/3)

by 신아연

인류가 가장 많이 접한 두 지혜의 책 《성경》과 《도덕경》을 가까이 하게 된 것만으로도 제 후반 인생은 '대박'입니다. 마치 두 번 결혼했는데 두 번 다 최고의 남편을 만나 팔자가 확 핀 여자처럼!


전반 인생은 고생되고 고달프고 고통스러웠지만 《성경》과 《도덕경》을 옆구리에 낀 인생 후반기는 잔잔하고 고요하고 평안하여 나른하기까지 합니다. 문제나 어려움이 없고 울퉁불퉁한 데가 없는 고른 길을 걷는 평탄함, 붓다는 이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오늘 53장 도덕경도 같은 말을 합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다면

큰 길로 가면서

옆길로 새는 것을 두려워하겠다.

큰 길은 아주 평탄하지만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은 화려하나

논밭은 황폐하고

창고는 텅 비어있다.


위정자들은 광채나는 비단 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기름진 음식을 물리도록 먹고 마시며

재물이 남아돈다.


실로 도둑이 아닌가?


이것은 도가 아니다.


지혜 있는 자는 평탄하게 펼쳐 진 큰 길로 간다고 하네요. 지혜에 관해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지혜는 그것이 그 사람의 삶에 미치는 효과로 판단해야 한다. 그 지혜가 당사자의 일상 삶의 어려움이나 문제들을 가라앉혀주는(느긋하고 편안하고 여유롭고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느낌을 낳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된 것일 수 없다. -아잔 브라흐마 / 『성난 물소 놓아주기』 공감의 기쁨


제가 지난 주에 '깜찍한' 실수를 했습니다. '끔찍한' 실수라고 여겨지지 않는 건 아마도 그간 주워모은 '지혜의 도토리' 덕분이가 싶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마음이 바로 편해졌으니까요. 쓴 글이 통째 날아간 것이죠. 오자 잡으려는 게 아니라 더 적절한 표현, 더 적합한 단어가 떠오를 땐 글을 올린 후에도 고쳐 쓰곤 하는데(실상 이 짓거리를 온종일, 심지어 며칠을 합니다. 머리카락에 붙은 껌딱지처럼 글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기 때문에), 그러다 키를 잘못 눌렀지요. 그날도 그런 사달이 난 거죠. 제가 아는 어느 변호사는 판사 시절 판결문을 날린 적이 있었다니 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 지네요.^^


글을 잃고 나면 다시 그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마침표 찍은 잉크가 채 마르지 않았음에도 결코 복기가 안 되는 겁니다. 머리 속에 다 있는 건 같지만 실상은 있는 게 아닌 거죠. 장 속의 똥처럼 이미 빠져나간 거죠. 배설의 쾌감만이 남을 뿐 똥 자체를 다시 만지작거릴 순 없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아침마다 제가 보내는 건 어쩌면 똥덩어리인지 몰라요. 글은 날아갔어도 저는 여전히 시원했거든요. 그 날의 똥을 눈 것처럼. 아침부터 지저분한 이야기로 냄새를 풍겨 미안합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아무리 원해도 같은 것을 반복할 수 없이 매일, 매순간이 다르다는. 어제의 인생을 오늘 똑같이 살 수는 없다는. 그래서 놓아보내고, 떠나보내고, 흘려보내고, 사라지게 하고, 지우고, 잊고, 놓고...., 오직 통과한 경험만이 남는. 그것이 궁극의 지혜겠지요. 그리고 그런 지혜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진정 행복할 수 있겠지요.


오늘 글이 옆길로 많이 샜네요. 노자께서 옆길로 가지 말라 하셨는데.ㅎㅎ 내일은 도의 길, 평탄한 길로 다시 들어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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