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58 / 덕경편 54장(2/3)
우리 모두는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수용의 말, 따뜻한 말, 온유한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지금 이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합니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노자는 오늘 우리에게 그런 위로를 주십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망가졌으면 망가진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실수했으면 실수한대로, 더러는 실족하고 유혹에 빠지고, 대책없이 게으르고 내가 생각해도 치사하고, 이룬 것 없고 돈 없고 가족 없고 옆에 사람 없고, 그러다가 늙고 병들고 그래도 다 괜찮다고 말이죠. 하다보니 제게 해당하는 것만 나열했네요.^^
그것이 '자신으로 자신을 보고'라는 의미입니다.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지금 이대로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돌틈 사이 이름 없는 여린 꽃이 화려한 화원의 화사한 장미보다 못할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으로 온전히 피어났으면 된 거니까요. 달리 표현해서 그 안에 도가 작용했으니까요.
자신으로 자신을 보고
가정으로 가정을 보고
마을로 마을을 보고
나라로 나라를 보고
세상으로 세상을 본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가정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저처럼 아예 붕괴되어 지붕이 날아가고 기둥이 뽑힌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좀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 자체로 그 안에서 도의 작용이 펼쳐질 것입니다. 도가 작동하는 한 공동체도, 나라도, 세상도 저마다 그 모습 그대로 온전히 나아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저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저처럼 자존감 낮고 자신에 대해 짜게 점수를 주는 사람도 느낄 수 있지요. 언제 보니 위로자가 되고, 치유자가 되고, 모범이 되고, 원한 적 없지만 멘토가 되어 있더라구요.
그런데 만약에 공자식으로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수직상승적 사다리에 저를 얹는다면 저는 발도 못 걸쳐요. 자기 하나도 못 지킨 사람에 가정도 망가진 주제이니, 말하자면 수신제가가 안 되었으니 이런 글 쓰기 전에 '너나 잘 하세요' 이럴 거란 말이죠.
그러기에 제게는 노자가 희망입니다. 도가 살 길이란 말이지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 소망처럼.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어떻게 아냐고요?
내가 어떻게 그걸 알았겠는가?
원래 이치가 그러하니 그런 것이지.
원래 이치? 무슨 이치? 도가 내재해 있는 이치죠. 도에 뿌리를 둔 이치죠. 도가 무엇인가요? 생명의 원천이죠. 연의 얼레요, 미운오리새끼가 백조로 깨닫게 되고, 올챙이가 개구리 되고, 애벌레가 나비되게 하는 작용이죠. 개별 생명에게 충만함, 발랄함, 자발성, 자율성, 역동성을 공급하는 본체 에너지죠. 하나님 말씀이요, 성령인 거죠.
만유에 편재하여 있기에 도로 인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도 있듯이 네 안에도 도가 있으니 대상과 나를 주객 분리의 관점이 아닌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나의 슬픔이 너의 슬픔이 된다는 뜻입니다. 상대를 상대로 보는 게 아니라 상대를 나로 보게 되니 자아의 경계가 흐려지고 너와 내가 하나되는 거지요.
우리는 아주 아주 드물게 타인을 내 영혼의 뜰에 들여놓을 때가 있지만, 성인은 자아경계를 완전히 지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해 죽기까지 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거지요. 사람 중의 최고봉, 사람의 아들, 인자(人子)로 이 땅에 오신 예수가 그러했듯이.
고맙습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제 54 장
도에 굳건히 선 사람은
쉽게 뽑히지 않고
도를 끌어안은 사람은
쉬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자손손 이어진다.
자신이 도를 실천하면
반드시 덕이 진실해지고
가정이 도를 실천하면
반드시 덕이 넘쳐흐르고
마을이 도를 실천하면
반드시 덕이 확장되며
나라가 도를 실천하면
반드시 덕이 풍성해지며
세상이 도를 실천하면
반드시 덕이 두루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으로 자신을 보고
가정으로 가정을 보고
마을로 마을을 보고
나라로 나라를 보고
세상으로 세상을 본다.
내가 어떻게 그걸 알았겠는가?
원래 이치가 그러하니 그런 것이지.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591] 하루보듬 도덕경 (54/2장)자신으로 자신을 보고|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