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이 나간 후 '나는 괜찮다,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게 참 안 된다는 독자의 댓글을 받았습니다. 저는 좀 놀랐습니다. 그게 그렇게 안 될 수도 있구나 하고. 개구리 올챙이 시절 잊는다고 저 역시도 그런 때가 있었음에도. 영성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는 중에 언제보니 못난이 자의식에서 벗어나 있더라구요.
그분은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 평생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눈이 있고 생각이 있는 이상 비교를 안 할 수는 없지요. 나보다 예쁘고 날씬하고 똑똑하고,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더 잘 했고, 남편도 잘 만났고 등등. 저의 비교 리스트지요.^^ 저는 돈에 대한 인식에는 원래 좀 둔하고 두 아들은 제게 과분할 정도라, 돈 하고 아이들은 비교저울에 올리지 않습니다.
비교하는 마음이 발동할 때 자신은 이렇게 한다고 오래 전에 김어준 씨가 한 말이 생각나네요. 자기보다 잘 생긴 넘(많았겠죠?ㅎ) 잘 나가는 넘, 예쁜 여자 만나는 넘을 보면 "좋겠다 씨바, 존나 부럽네" 딱 여기까지만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바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고.
비교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되니까) 비교를 통해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몰아가는 드라마를 쓰지 말라는 거지요. '너는 너고 나는 나다'란 인식이 명확해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가 있으니까요. 어제 우리 배웠잖아요. '자신으로 자신을 보고'.
이게 안 되면 내 안의 도의 작용을 멈춰 세우고 자아를 작동시키기 시작합니다. '되고 싶은 나, 되어야 할 나'의 이미지를 향해 자기 학대에 시동을 걸고, 밑도 끝도 없이 '바람직한 나'를 겨냥한 망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타인으로 타인을 보고'가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못 보면, 상대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너와 내가 도 안에서 하나 될 수가 없어요. 성령충만해야 할 영이 자아충만한 혼의 방해를 받아 도에, 하나님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없게 되는 거지요.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일평생 이렇게 살기 때문에, 늘 자아로만, 혼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남과 비교하여 우월감과 열등감의 시소를 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도의 관점, 영의 차원에서 보면 실은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중 하나가 바로 이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원죄가 뭔가요? 분리의 심연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도와 우리를 단절시키는 메울 수 없는 간극입니다. 그렇게 되면 덕이, 사랑이 우리 사이에, 피조물들 사이에 흐를 수 없게 됩니다.
그러기에 내 안에 도를, 신성을, 하나님을 깊이 만나야 하는 거지요. 영성의 스위치를 올리고 밸브를 'ON'으로 돌려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아야만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마치 찬 방고래에 보일러 온수가 돌듯이.
반야심경의 마지막 주문 구절,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가자 가자, 저 피안의 세계로 가자, 모두 함께 저 피안의 세계로 가자)에서의 '가기'도 바로 그 '심연을 건너가기' 아닌가요. 잇고, 메우고, 건너감으로써 우리는 온전한 나를 만납니다. 신과 나, 나와 너, 수직과 수평의 관계가 온전해집니다.
비교가 미움을 낳고 미움이 죄의 씨를 뿌립니다. 원죄가 자범죄(自犯罪)의 온상이 되는 거지요.
댓글 주신 독자님, 비교 좀 했다고 범죄자 취급하냐고 기분나빠 하실까봐 걱정되네요. 미안합니다. 제 말에 도취되어 여기까지 왔네요.^^
고맙습니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592] 참을 수 없는 비교의 괴로움|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