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이유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59 / 덕경편 55장(1/3)

by 신아연

저는 오늘 아침 좀 기운이 빠지네요. 지난 몇 달 간 너무 혼자 지낸 탓이지 싶네요. 저처럼 살라고 하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벌써 돌았을 거예요.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연인'의 주인공이 되어 있네요, 제가.


인근에 사시는 독자께서 일전에 보라매 공원을 함께 산책하자는 걸 날씨가 추워 미뤄두고 있었는데, 조만간 연락드려야겠습니다. 이래저래 제 사는 모양이 조화롭지 않습니다. 평균에서 비껴나 있고, 균형이 무너지고, 상황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제 친구가 그래요, 저를 보면 항상 무언가에 빠져있다고. 골똘하고 치우쳐 있다고. 제가 그런 경향이 있긴 합니다. 이번 주에 살필 도덕경 55장에 비춰볼 때 그러니, 당연히 덕이 두터울 수 없겠지요.


55장은 천진하고 순수하게, 안전하고 안정되게,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도를 따라 사는 모습을 갓난아이를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제 55 장


덕을 두텁게 지니고 있는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독 있는 벌레나 뱀이 그를 물지 않고

맹수도 덤비지 않으며

사나운 새도 채가지 않는다.


뼈는 약하고 힘줄은 부드럽지만

쥐는 힘은 단단하고

남녀의 교합을 알지 못하지만

잠지가 발딱 서는 것은

그 정기의 지극함이다.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그 조화의 지극함이다.


조화는 불변의 원리,

불변의 원리를 아는 것은 명철함이다.


삶에서 뭔가를 덧붙이려고

애를 쓰는 것은 괴상한 짓이며,

기를 써대는 것은 강포함이다.

기세등등할수록 바로 쇠퇴하기 마련이니


그것은 도를 따르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가 아니면 일찍 끝장난다.


어떤가요? 어린 핏덩이에 대한 노자의 정밀묘사가 놀랍지 않나요? 특히 그 어린 것의 발기 현상, 이야말로 자연의 순수 정기지요. 세상 경험은 1도 없고, 여자라곤 엄마밖에 모르는데 에로틱한 상상이나 음란한 생각을 했을 리가 없잖아요.


우는 것에 대한 관찰도 기가 막히지요.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고 한 것 말입니다. 어른이라면 우는 것은 고사하고 고성으로 노래 몇 곡만 불러도 목이 잠기고 쉴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어린아이는 우는 일이 곧 생리현상이자 자연현상이니 그 자체로 조화로움 속에서 온종일 울 수가 있는 거지요.


남녀의 교합을 알지 못하지만

잠지가 발딱 서는 것은

그 정기의 지극함이다.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그 조화의 지극함이다.


잠지가 저절로 서는 것,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 젖먹이에 대한 노자의 탁월한 통찰력에 무릎을 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독 있는 벌레나 뱀이 그를 물지 않고

맹수도 덤비지 않으며

사나운 새도 채가지 않는다.


성경 이사야서 11장에도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고 하지요. 존재 근원과의 연결, 끊어졌던 절대자와의 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보게 합니다.


왜 유난히 아이처럼 순수한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 지인 중에 바로 떠오르는 분이 있는데요. 몇몇 수도자들, 예술가들의 모습에서도 보이고요. 이런 사람들은 단순히 동안이라고만 할 수 없는, 내면의 무엇이 도무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하는 거지요. 존재의 근원에서 오는 에너지, 그 에너지와 주파수를 맞추는 삶의 조화로움이 아닐까 싶어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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