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60 / 덕경편 55장(2/3)
생각할수록 갓난아이, 어린아이는 신비롭지요. 그 여린 것의 쥐는 힘은 참으로 대단하죠. 몸 전체가 달려올라올 만큼. 걸음마를 배울 때는 또 어떤가요? 어른이 그렇게 자주 넘어졌다간 뇌진탕 걸리기 딱일테죠.
결국 조화의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어린 것들의 모습 속에서 조화의 지극함을 보고 우리도 삶 속에 적용한다면 보다 도에 가까운 삶, 뿌리를 아는 삶, 참나를 찾는 삶, 영성 깊은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인 거죠. 본문에서는 '명철(明哲)'이라고 표현하고 있네요.
'명(明)'이란 글자는 해와 달의 조화로 이룬 빛이요, 밝음입니다. 해만으로, 달만으로 만들 수 있는 반쪽짜리 빛이 아니라 온쪽의 빛입니다. 그것은 조화로운 빛, 참다운 지혜의 빛입니다. 약함 속에 강함을 품은, 약함이 강함이 되고, 강함이 약함이 되는 모순의 영원한 조화, 온전한 사랑의 빛입니다. 한 마디로 진리의 빛입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려 보십시오. 도로 충만하게 사는 것이, 덕이 두텁다는 것이, 뿌리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참나를 만난다는 것이, 영적으로 산다는 것이, 영성이 높다는 것이, 명철함이 무엇인지 아리까리하다면 예수의 생애를 그 모델로 하고 예수처럼 살면 됩니다.
어린아이더러 뭐라고 하지 않듯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교회를 안 다녀도 예수를 디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저도 '가나안 신자'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가나안'을 거꾸로 읽어보세요.^^
그렇게 산다면 뱀도, 맹수도, 독수리도 공격하지 않겠지요. 삶의 환경이 곧 정글이라 할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예수처럼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저는 한 가지를 제 삶에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정말 누가 뭐라고 하든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상대가 무조건 옳고 내가 항상 틀려서가 아니라, 내 생각으로 재단하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뜻입니다. 장자의 빈배 비유나 목계 같은 거지요. 전에 우리 다 공부했지요.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뱀도, 맹수도, 독수리도 만날 일이 없어요. 만나도 공격을 안 당합니다. 노자 말씀처럼 어린아이를 공격하지 않듯이. 누구를 만나든, 누구와 대화하든 두려워할 게 없다는 뜻입니다. 나는 무조건 상대의 말을 존중할 거니까요. 그러니 긴장하고 무장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제가 연초에 제안한 '예쁘게 말하기'의 연장이죠. 예쁘게 말하려면 우선 '예쁘게 들어야' 하니까요. 이 실천은 무엇보다 돈이 안 들어서 좋아요. 저는 뭐든 돈이 든다하면 겁부터 나거든요.^^ 여러분도 저하고 같이 한번 해 보실래요?
제가 이런 '경지'에 도전, 아니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에는 나름 사연이 있습니다. 내 멋대로 반응했다가 정말이지 맹수의 맹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박살이 나고 피투성이로 깨져서 지금도 끙끙 앓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십니다. 저는 명철하지 못하기에 늘 저지르고 깨닫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칩니다.
내일은 삶의 조화를 깨면서 잘난 척하고, 나대고, 기를 써대면 어떻게 되는가를 살펴보지요.
고맙습니다.
제 55 장
덕을 두텁게 지니고 있는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독 있는 벌레나 뱀이 그를 물지 않고
맹수도 덤비지 않으며
사나운 새도 채가지 않는다.
뼈는 약하고 힘줄은 부드럽지만
쥐는 힘은 단단하고
남녀의 교합을 알지 못하지만
잠지가 발딱 서는 것은
그 정기의 지극함이다.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그 조화의 지극함이다.
조화는 불변의 원리,
불변의 원리를 아는 것은 명철함이다.
삶에서 뭔가를 덧붙이려고
애를 쓰는 것은 괴상한 짓이며,
기를 써대는 것은 강포함이다.
기세등등할수록 바로 쇠퇴하기 마련이니
그것은 도를 따르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가 아니면 일찍 끝장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