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고 싶은 말이 몇 가지가 있는데 무엇부터할까 망설여지네요. 한 주에 한 가지씩 하면 되니까 결국 순서의 문제겠지요. 매주 죽음이야기를 쓰고 나이가 60이 되니 요즘은 하는 것마다 죽음과 연결시키게 됩니다.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죽음을 무서워했어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대여섯 살 때 엄마가 옷을 사주셨는데 '내가 이걸 몇 번이나 입을 수 있을까, 내년에도 입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고, 공부를 좀 열심히 해야한다 싶다가도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너무 억울하잖아,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자' 이런 식이었지요. 공부하기 싫은 핑계도 참 희안하게 댄다 하시겠지만 저한텐 핑계가 아니었어요.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하면 되니까요. 저는 의지력이 약해서 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하거든요.
아마도 정서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자라는 조숙하고 예민한 아이 특유의 심리불안 탓이었겠지요. 그렇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생 끌고 다니다가 이제야말로 그 실체를 곧 만나게 될테지요.
세상에 오기 위해 준비가 있었지요. 우선 몸을 만들어야 하지요.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몸을 만듭니다. '몸을 만든다' 하니 제 아들들 생각이 나네요. 둘다 여간 몸짱이 아니거든요. 날마다 헬스클럽에 가다 못해 아예 퍼스널 트레이너 자격증을 땄어요, 둘 다. 그냥 운동하는 걸로는 성이 안 차서 직접 전문 관리를 하려고.
그렇게 우리도 최선을 다해 몸을 만들어 이 세상에 왔습니다(제 자신을 볼 때 최선을 다 한 게 이 정도일까 싶지만요.^^). 그리고는 그 몸에 영과 혼을 담아 한 평생을 삽니다. 그랬는데 이제는 저 세상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몸을 벗어야 합니다. 마치 헌 옷을 벗듯, 생선 가시를 바르듯 몸은 버리고 영과 혼만 남겨야 합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 누구나 그게 가장 중요하고 오래 걸리는 죽음 준비겠지요. 영혼을 남기자는 건 귀신이 되자는 게 아니라, 제가 요즘 실천하고 있는 '예쁘게 듣고 예쁘게 말하기' 같은 걸 말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맺어온 관계에서 맺힌 것은 풀고, 막힌 것은 뚫어 가지런히 하자는 거지요.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고, 한을 풀고 원망을 녹여야 합니다.
저는 생각나는대로 직접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중입니다. 생각나지 않는대로 참회의 기도를 합니다. 뻔뻔하게도 나는 잊어버렸지만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해. 무엇보다 전 남편을 위해 기도합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되자는 혼인 서약을 깨뜨려 미안해 하며. 더 좋은 아내가 못된 걸 마음 아파하며. 서로에게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안타까워하며.
지난 해 8월, 바젤에서 안락사를 택하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식 자랑을 지나치게 하는 어떤 부인에게 "너무 그렇게 자랑을 하면 자식한테 안 좋을 수도 있으니 그만 좀 하라"고 핀잔을 준 적이 있었는데, 스위스에 죽으러 오기 전에 사과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그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이어야 하는 거지요. 몸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해야 하는 거지요. 몸이 기회입니다. 지상에 살아 있는 동안이 기회입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관계에서 죄 짓지 말아야 하는 거지요.
이게 쉽지 않지요. 그러려면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하니까요. 우리 자생인만이라도 그렇게 해 봐요. 예쁘게 듣고 예쁘게 말하기. 저는 올 들어 아직까지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하긴 만난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었네요. ㅎㅎ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597] 목요죽음이야기(43) 죽을 준비, 뭣이 중헌디?|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