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두었던 또 하나의 심장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63 / 덕경편 56장(2/3)

by 신아연


그럼 또 다른 앎은 어떤 앎일까요? 그 앎은 언어에는 아예 잡히지도 않는 앎입니다. 생각으로 드러내고, 감정으로 표현하며, 말로 떠들어 댈래야 댈 수가 없는 대상에 대한 앎입니다. 오감으로 잡히지 않고 이성과 감성으로 포착되지 않는 앎, 56장에서 말하는 앎은 그러한 것에 대한 앎입니다.


어제 이렇게 끝났지요? 그런 앎이란 곧 '진리'에 대한 앎입니다. '도'에 대한 앎입니다. 그럼 그 앎에는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요?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폐쇄하며


구멍을 막고 문을 폐쇄한다는 건 52장에서도 나왔지요? 무슨 뜻인가요? 네, 눈, 코, 입, 귀등 신체의 오감을 작동시키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진리를, 도를 이런 것이라고 떠들어 대봤자 그건 진리일 수 없다는 뜻이죠.


'이해된 신은 신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는 이런 거'라고 하면 도가 아니듯이요. 신은, 진리는, 도는 지적, 감각적 이해 너머에 있단 뜻이지요. 그럼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요? 저의 표현으로는 힘에 부쳐 이어령의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에서 빌려오겠습니다.


"심장은 하나지만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한 쪽에 묻어두었던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순간을 느끼는 때가 옵니다. 그런 계기는 누구에게나 갑작스레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


네, 저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저의 또 하나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처절한 외로움과 가없는 고독의 길을 따라 하나님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오셔서 세상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던 다른 쪽 심장의 두려움을 치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떻게 심장이 두 개일 수 있냐고 따지고 싶은 분, 앞으로는 저한테 말 걸지 마세요. 저는 제 자신이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다고 착각하는 편입니다만, 거기에는 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기 전에 자신의 영적 상상력을 개발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그 얽힌 것을 풀고


네, 세상과 화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각을 뜨느라 날카롭던 칼이 무뎌지고, 나와 대상을 나누고 쪼갤수록 엉키기만 했던 관계가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상과 나를 경계짓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대상과 하나될 수 있다면 도인입니다. 성화 되어간다는 건 그런 의미지요. 노자는 그것을 '빛을 희미하게 하고 티끌과 하나된다(화광동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광동진(和光同塵),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와 함께 도덕경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 또 나왔네요. 화광동진을 예수 버전으로 하자면 '성육신(成肉身) '이지요.


내일 이어갑니다.

고맙습니다.


제 56 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폐쇄하며

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그 얽힌 것을 풀고

그 빛을 희미하게 하고

그 티끌과 하나된다.

이것을 신비스러운 하나(현동玄同)라 한다.


그러므로 (도를 터득한 사람은)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으며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으며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천하가 이를 귀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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