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닥의 도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64/ 덕경편 56장(3/3)

by 신아연


오늘은 그 유명한 화기광 동기진 (和其光 同其塵), 화광동진에 이르렀습니다.


그 빛을 희미하게 하고

그 티끌과 하나된다

이것을 신비스러운 하나(현동玄同)라 한다.


무슨 말인가요?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죄 많은 이 땅에 오셨듯이, 성육신하셨듯이 찬란한 빛의 조도를 낮추고(왜나하면 너무 눈부시면 가까이 할 수 없으니) 먼지같은 사바세계와 기꺼이 하나된다는 뜻입니다. 왜요? 끌어안으려고요.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으려고요. 하나가 되려구요. 상생, 조화, 합일에 이르려고요.


이러한 하나됨을 현동(현동玄同)이라고 합니다. '신비스러운 하나'라는 거지요. 이때의 '현(玄)'은 검을 현이 아니라 오묘하다, 심오하다는 뜻입니다.


집의 현관(玄關)을 보세요. 현동과 같은 '현'자를 쓰고 있지요? 어둑어둑하면서(현관에다 엄청나게 높은 촉의 전구를 다는 경우는 없지요), 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영역이잖아요. 생각해 보면 현관이란 공간은 특이하죠. 들고나는 것을 이어주는, 집 안과 집 밖을 포용하는 어둑하고 오묘한 곳 아닌가요?


도인도 그런 사람인 거죠. 막상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자칫 회색분자처럼 보이지만 실상 회색이 본색입니다. 흑백으로 갈리는 사람,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 말이 많은 사람일수록 진상과 실상에서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은 함께 하기 부담스럽죠. 당기거나 밀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할 것만 같아요. 내편 아니면 네편으로 갈릴 수밖에 없지요. 한 마디로 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죠. 반면 날카롭고 광나는 지혜의 촉을 낮추고 현동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말로 도의 사람은


그러므로 (도를 터득한 사람은)

가까이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으며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으며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이렇다네요. 스스로 온전하고 충만하니 뭘 어떻게 더하고 뺄 수가 없는 거지요. 친해지려고 가까이 가도 덤덤, 아닌 것 같아서 멀리해 보려해도 그러거나 말거나, 뭘 좀 보태주려해도 묵묵, 괜시리 얄미워 해코지를 해볼까 하다가도 딱히 빌미를 못 잡겠고, 도무지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어서 제 풀에 물러나게 되는 사람, 그러면서도 그런 모습, 그런 태도 자체가 귀하게 여겨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곧 도인이란 거죠. 그래서 결국 어떤 위치에 선다고요?


그러기에 천하가 이를 귀하게 여긴다.


네, 세상의 으뜸자리, 중심자리, 의지자리가 되는 거지요.


고상한 분들 앞에서 이런 저속한 표현 죄송하지만,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고 했듯이 '아닥' 하십시오. 아닥은 아가리 닥쳐의 줄임말이죠. ㅎㅎ


제가 지난 10년 간 이 정도라도 사람이 된 데에는, 궁극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데에는 아닥의 힘이 가장 컸습니다. 제 경우는 '억지아닥, 강제아닥'이었지만 효과는 같았습니다. 아닥은 도로 가는 필수코스입니다. 아닥하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쪽팔리고 찝찝할 일도 줄어듭니다. 아닥의 유익, 아닥의 불패, 아닥의 내밀하고 은밀한 즐거움을 여러분들께 '강추'합니다.^^


56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제 56 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폐쇄하며

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그 얽힌 것을 풀고

그 빛을 희미하게 하고

그 티끌과 하나된다.

이것을 신비스러운 하나(현동玄同)라 한다.


그러므로 (도를 터득한 사람은)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으며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으며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천하가 이를 귀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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