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의 확신

by 신아연


지금 텔레비전의 한 방송사에서 '딱 그만큼 덜 싫어서' 뽑힌 대통령이라고 말하네요. 윤 후보가 이 후보보다 0.8% 덜 싫어서. 컵에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 반이나 남았다고 할 때처럼 시선과 관점의 차이가 사안을 다르게 인식하도록 하는 거겠지요.



삶과 죽음에 관한 시선은 어떨까요? 제 경우 살 날이 산 날보다 명백히 적어지면서 선택의 여지 없이 죽음 쪽으로 시선이 옮겨집니다. 지금 여기를 잘 살기 위해서 죽음을 상기하면서도, 죽음 그 자체를 자주 생각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최근에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지난 해 12월 16일에 저의 회심(回心)이 있었습니다(여기는 간증 자리가 아니니 회심의 계기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육으로는 1963년 4월 14일 생이지만 영의 자녀로는 2021년 12월 16일 생인 거지요. 새로 태어난 지 채 백일도 되지 않았습니다.



영의 부모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서 성화의 젖을 먹기 시작했습니다만, 저처럼 완악한 인간이 성화라고 해봤자 날마다 시지프스의 돌입니다. 나는 안 되는 인간이라는 좌절감만 매순간 확인하는 거지요. 시지프스의 돌처럼 늘 제 자리로 돌아와 있는. 그럼에도 여하간 죽음 이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우편 강도처럼 순전히 무임승차인 거죠.



제 삶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죽음 이후는 대박입니다. 영생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천국까지는 몰라도 일단 낙원에는 명단을 올렸습니다. 천국과 낙원이 어떻게 다르냐고요? 낙원은 천국을 가기 위한 대기장소입니다. 서울역이나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같은 데죠.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 해서 무조건 천국으로 직행하는 게 아니라 일단 낙원에서 심사를 받습니다. 티켓 검사를 하는 거지요. KTX열차 승객인지, 무궁화호를 탈 사람인지, 우등고속인지 일반고속버스 탑승인지 대합실인 낙원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저야 뭐 아무거나, 입석이라도 감지덕지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우습다면 아직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남의 죽음에는 얼마든지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있고, 아무 말도 안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데 갔을 거라든가, 윤회나 유물론적 관점에서 말이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의 죽음을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니 그렇게 되지 않더라구요.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게 없더라구요. 막연히 어딘가로 간다거나, 다시 태어난다거나,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말을 자기 죽음을 두고도 할 수 있습니까?


죽음 이후의 세계, 삶 너머의 삶은 자기 확신으로, 믿음으로 보장됩니다. 그 확신 이제 저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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