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대고 설치지 않으면

하루보듬 도덕경 57/3장

by 신아연


"주택규제를 하면 할수록 편법을 생각하게 되네요."


어제 글에 한 독자의 말씀입니다. 국가가 복잡한 법령으로 기교를 부릴 때 국민이라고 "날 잡아잡수"하고 있지만은 않는 거죠. 걸릴 때 걸리더라도 '맞 기교'를 부려보게 되는 거지요.


우리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가 막 머리를 굴리고 나를 조종하려고 들면, 나도 거기에 맞춰 막 머리를 굴리면서 방어하게 되잖아요. 나를 편안하게 대해주는 사람 앞에서는 나도 스르르 무장해제를 하게 되구요. 주는대로 받는다는 게 그런 말이죠. 판단받지 않으려면 판단하지 말라는 것도.


뉴턴의 작용 반작용의 법칙인 거죠. 57장 마지막 구절에서 노자가 이 법칙을 말하고 있네요.


그러므로

성인은 말씀하시길


내가 무위하면

백성은 저절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를 좋아하면

백성은 저절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을 꾀하지 않으면

백성은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무욕하면

백성은 저절로 질박해진다고.


지도자가, 대통령이, 국가가 '무위의 모범'을 보이면 국민은 저절로 안정될 것입니다. 어제 대화한 독자께서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정치를 해요."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게요.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우리는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나라지요."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자식이 부모 속 썩이는 게 정상인데, 부모가 자식 속 썩이는 집구석처럼.


무위하고, 고요하고, 일을 꾀하지 않고, 무욕하는 것은 윤리도덕적 차원 이상의 것입니다. 공자보다 노자가 한 수 위인 것은 지성보다 영성이 한 수 위인 것과 같습니다. 공자가 지성인이라면 노자는 영성가입니다. 공자가 윤리의 실천가라면 노자는 윤리를 초월합니다. 마치 드론처럼 대상을 위에서 포착하는, 전모를 파악하는, 통찰력의 거장인 거지요.


이 거장이 본인의 생각을 "성인이 말씀하시길..."이렇게 겸손하게 드러내시네요. 마치 3층천 천국을 둘러보고 온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이 거길 다녀왔는데..."이렇게 자신을 낮추듯이. 저는 이런 영성에 가슴이 뜁니다. 잘난 척 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관계 속에 끌어들이지 않는. 만났다 헤어져도 흔적이나 자국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는.


도덕경 57장과 함께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은 사람보다 강하다"는 고린도 전서 1장 25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무위에 대한 성경 버전인 거죠. 내 힘으로 뭘 할 수 있다(유위)고 설치지 말고, 잠잠히 하나님의 하심(무위)을 바라보라는.


어찌 새 대통령에게만 주는 메시지일까요.


57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제 57 장


나라는 올바름으로 다스리고

군사는 계책으로 부린다지만

세상은 무위(함이 없음)로 얻는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세상에 금기가 많을수록

백성은 점점 등을 돌리고

날카로운 도구가 많을수록

나라는 더욱 혼란해지고

기교를 부릴수록

이상한 것이 점점 많아지고

법령이 복잡해질수록

도둑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말씀하시길


내가 무위하면

백성은 저절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를 좋아하면

백성은 저절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을 꾀하지 않으면

백성은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무욕하면

백성은 저절로 질박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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