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 (58/3장)
우리는 왜 '절대'에 빠지는 걸까요? 왜 '빠'나 '뽕'이 되는 걸까요? 왜 미혹되는 걸까요? 약해서 그렇지요. 나 혼자 설 자신이 없으니까 나보다 더 강한 것에 의지하려는 심리지요.
그래서 상대나 대상을 우상으로 만들지요. 거기에 내가 기대야 하니까. 그렇게 해서 숭배가 시작되지요. 그랬는데 아니다 싶으면 두렵고 불안해서 개칠을 하지요. 그때부터는 보이는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대로 보기 시작합니다. 실상과 진실을 호도합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없고, 바름이 비뚤어짐이 되고, 선함이 변하여 사악함이 되는 일이 다반사건만.
그런 사람일수록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구석이 자기한테 있다 싶으면 그것으로 가차없이 난도질을 합니다. 우상화한 상대는 실상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니까요.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나 자신이지요. 어느 정도로 잘났나면 매사 남을 판단할 정도로 잘났습니다. 예수님도 하지 않는 판단을 누워서 떡 먹기보다, 식은 죽 먹기 보다 잘 합니다. 내가 옳은 이상 옳지 않은 상대를 절대 봐 줄 수 없는 거지요.
인류의 조상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게 왜 죄가 될까요? 바로 이런 되잖은, 같잖은 판단과 분별의 칼을 휘두르게 되니까요. 그게 곧 죄지요. 선악의 '분별력'이 생기는 게 아니라, 나와 남을 가르는 근거없는 '분별심'만 생기니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되었던 거지요.
미숙한 사람일수록 내편, 네편을 가르지요. 어린아이들은 곧장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미숙한 나라의 미숙한 국민입니다. 전라도와 경상도로 가르고, 남자와 여자로 가르고, 젊은이와 늙은이로 가르고, 잘 생긴 사람 못 생긴 사람으로 가르고, 흙수저와 금수저로 가르는 등.
저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이 강한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편견도 심하고, 판단도 빠르고, 정죄와 수치심을 심어주는 미숙한 집안이었지요. 성경에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고 했는데, 그리하면 만사형통하리라 했는데, 선친이 그만 좌로 치우치는 바람에 빨갱이 집안이 되었고 거기에 휩쓸린 가족들 삶이 형통할리가 없었지요.
이제 58장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반듯하지만 남을 해치지 않고
예리하되 다치게 하지 않고
곧지만 뻗대지 않고
빛나지만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성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네, 판단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분별심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스스로의 분별력은 확고하지만 그것을 휘두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칼을 지니되 칼집과 함께 지니는 사람입니다. 자체 발광을 하지만 그 빛으로 다른 사람의 어둠을 수치스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난도질, 지적질을 할 줄 몰라서, 약점 잡을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알아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옆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푸근합니다. 든든합니다. 쉼을 얻고 위로를 받습니다. 온갖 잡동사니가 뒤섞인 더러운 물도 바다로 흘러들면 맑게 정화되듯이 성인은 바다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성인이 하는 정치라면 찰찰(察察)할 수가 없겠지요? 민민(悶悶)할 수밖에요.
제 58 장
정치가 듬성하면 백성은 순박해지고
정치가 촘촘하면 백성은 교활해진다
화로 여긴 것에 복이 기대어 있고
복으로 여긴 것에 화가 엎드려 있다.
누가 그 끝을 알리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바름이 비뚤어짐이 되고
선함이 변하여 사악함이 된다.
사람들이 이런 미혹에 빠진 것도
참으로 한참 되었다.
그러므로 성인은
반듯하지만 남을 해치지 않고
예리하되 다치게 하지 않고
곧지만 뻗대지 않고
빛나지만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623] 하루보듬 도덕경 (58/3장) 선악과를 따 먹은 게 왜 죄가 될까요?|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