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 (61/1장)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마감 원고가 몇 개 있어서 내리 글을 썼습니다. 저는 글 쓰는 제 일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운명적 굴레임을 느낍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꼭 돈 벌려고 쓰는 게 아니지 않냐, 너는 돈 주고도 쓸 사람이니까."라고 하셨지요.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면 실의에 빠져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손 내미는 글, 슬픔과 고통의 눈물을 씻는 글, 사람 살리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것이 세상에 태어나 제가 하고 가야 할 일이라는 걸 깨달아 갑니다. 들의 풀 같이 살더라도 풀의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이번 주는 도가 나라의 문턱을 넘어갑니다.
61장 같이 보겠습니다.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아서
천하가 모이는 곳이다.
그것은 세상을 품는 여인,
여자는 늘 고요함으로 남자를 이기고
고요함으로 아래에 머문다.
그러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에 있는 것으로
작은 나라를 얻는다.
작은 나라는 큰 나라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큰 나라를 얻는다.
그러므로
어떤 나라는 스스로 아래에 있음으로써 얻고
어떤 나라는 스스로 내려감으로써 얻는다.
큰 나라는
작은 나라 백성들을 기르려는 나라이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 백성들을 섬기려는 나라이다.
두 나라 모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큰 나라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국제 관계에서 도가 작용할 때의 모습입니다. 유엔에서 국제 질서를 위해 도를 체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강대국은 약소국을 동생처럼 품고, 약소국은 강대국을 형님처럼 모시며 훈훈히 살아갈 수 있겠지요.
너무나 비현실적인가요? 맞습니다. 세상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요. 노자 아니라 노자 할아버지 때에도. 노자 또한 눈 앞에 펼쳐지는 춘추전국시대의 피 튀기는 약육강식의 정세를 한탄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비참한 현실을 바라보며 "이러면 좀 좋으랴" 하는 마음으로.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아서
천하가 모이는 곳이다.
그것은 세상을 품는 여인,
여자는 늘 고요함으로 남자를 이기고
고요함으로 아래에 머문다.
강의 하류, 나아가 바다는 모든 것을 품습니다. 낮게 위치하기 때문이지요. 고요하기 때문이지요. 사람 중에는 여자가 남자를 품습니다. 이 말을 하니 찔림이 있네요. 저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서요. 저는 남자를 품지도, '품기지도' 않는 여자죠. 여자답지도, 여자같지도 않게 평생을 어리삥삥하게 살았으니까요.
저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들이 제일 부럽습니다. 부럽다기 보다 신기합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될 것 같은 일이 그 일이니까요. 주변의 어떤 여자들은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살림 솜씨도 별론데 남편을 휘어잡고 사랑을 받더라는 거죠. 세상을 이기는 남자 위에 그 남자를 이기는 여자가 있다더니, 여자로 태어나 남자 하나 잘 '키워서' 누리고 살면 얼마나 좋은가요. 제가 남편 사랑을 받았다면 이렇게 새벽글을 쓰지 않았겠지요.^^
여자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때에 노자께서 도의 상징으로까지 여자를 인정한 건 신적 발상이지만, 요즘 여자들은 '고요함'으로 남자를 이기는 게 아니라 '요란함'으로 이기죠. ㅎㅎ
내일 계속 볼게요.
고맙습니다.
하재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