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그를 버리겠는가

하루 보듬 도덕경 (62/1장)

by 신아연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거의 반 년 만에 외출다운 외출을 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지인 자녀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아니, 지인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오직 섬김으로 제 남은 생의 든든한 영적 뒷배가 되어주고 계신 분의 따님 혼인잔치였습니다.



인사를 나눈 하객 중 한 분 또한 그 빛나는 삶에 눈이 부셨습니다. 아니, 영이 부셨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타인을 섬기며 살아 온 그분의 60평생과 저의 생이 너무나 대조적이었던 거지요. 나밖에 몰랐고, 그랬지만 잘 살지도 못했고, 지금은 나 하나도 버거운 남루한 제 인생을 돌아볼 때, "그럼에도 네게는 도가 있지 않냐"고 오늘 노선생께서 위로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도의 은혜 아래, 제게는 하나님의 은총 아래 빛바래고 시시하고 죄 많은 삶을 다독임 받습니다. 62장에서는 도의 한량 없는 포용성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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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작가의 '심상'



도는 만물을 감싸주니

착한 사람의 보배요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은신처가 된다.


번지르한 말솜씨도 장사하는 데는 값지고

거들먹대는 행동도 아주 보탬이 없지는 않다.

사람이 착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그를 버리겠는가?


그럼으로 임금을 세우고

높은 관직을 임명할 때

비록 큰 구슬을 화려한 수레 가득 바친다 해도

가만히 앉아 도를 일러주는 것만 못하다.


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무엇인가?

도로써 구하면 얻을 수 있고

죄를 지었어도 도로써 면한다는 말이 있으니

그래서 도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첫 두 단락 보겠습니다.


49장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요? "나는 착한 사람을 착하게 대하지만 착하지 않은 사람도 착하게 대한다"고. 그래야 세상이 착하게 된다시며. 예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시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도는 만물을 감싸주니

착한 사람의 보배요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은신처가 된다.


번지르한 말솜씨도 장사하는 데는 값지고

거들먹대는 행동도 아주 보탬이 없지는 않다.

사람이 착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그를 버리겠는가?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태복음 5장 45절 말씀과 통하지요?


제가 요즘 모든 책을 폐하고 성경만 읽다보니 노자 말씀과 예수 말씀의 선긋기를 하게 되네요. 노자와 예수는 여러 모양으로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2장 2절에서는 "예수께서 설교(preaching the word)하셨다"는 영문을 "예수께서 도를 말씀하셨다"라고 번역했지요.


자식이 거짓말을 자꾸해서 걱정이라면 그 자식을 기상청에 보내라는 구식 우스갯소리처럼, 말에 뻥이 심하고 행동이 허세에 쩔어있는 것도 장사치나 정치꾼들에게는 큰 재주죠. 그런 사람은 그렇게 살도록 냅둬야지 어쩌겠어요. 그런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나아가 적극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들, 범죄자가 내 자식이라면 어쩌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극형에 처하라고 소리치지만 부모인 나는 그 자식을 버릴 수 있나요? 도는 바로 그 자식의 부모와 같기에 "어찌 버릴 수 있겠냐"고 노자는 말씀하시는 거지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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