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 (62/3장)
살다보면 "내가 왜 이러나,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제자리로, 원래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럴 때가 있지요. 영화 <박하사탕>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설경구처럼.
박하사탕 감독이창동출연설경구, 문소리, 김여진개봉2000. 01. 01. / 2018. 04. 26. 재개봉
뭘 근거로 이러면 안 되고, 뭘 두고 제자리라고 하는 걸까요? 회복되고 싶고 온전해지고 싶은 원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도입니다. 도를 근거로 한, 도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을 하건 못 하건 우리 모두는 회복, 소생의 자리로 끊임없이 회귀하고자 하는 영적 욕구가 있습니다. 도로써 구하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그렇게 이해합니다. 도로써 구하면서 동시에 도로 돌아가는 거지요. 기독교 버전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을 구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영 자리와 합일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무엇인가?
도로써 구하면 얻을 수 있고
죄를 지었어도 도로써 면한다는 말이 있으니
그래서 도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엄영문 / 우방심리상담소장
나아가 우리에게는 죄의 문제가 있습니다. 과도한 '죄의식'과는 별개로 실제로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털어서 먼지 나는 정도가 아닌 거죠. 죄는 정신적, 영적 성장을 가로 막고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끊는 매우 심각한 일탈입니다. 물 공급원이 끊겨서 수도에서 물이 안 나오는 거지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궁극엔 우리 존재가 병들고 썩어서 파멸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죄값을 치르고' 자유로워져야 하는데요, 노자는 도로써 그 값을 치를 수 있다고 하시네요. 도로 인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지요. 2500년 전 노자가 500년 후에 오실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모습 같지요? 아예 우리 죄를 도말하실 분, 내 죄값을 대신 치르고 너는 이제 자유라고 선언하실 분.
저는 죄를 많이 지었고, 짓고, 지을 것이기 때문에 죄사함의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요,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돌아보다 못해 갓난 아이 적에 엄마 젖을 빨리 달라고 큰 소리로 울고 보챈 것까지 회개했다는 어거스틴까지는 못 되어도, 그때그때 죄를 털어내지 않고는 짓눌려 살 수가 없는 거지요.
죄란 과녁을 벗어난 상태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녁에서 차츰차츰 벗어나게 되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되는 거지요. 과녁이, 기준이 바로 도라는 말씀입니다. 과녁으로 다시 돌아오고, 또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함입니다.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않는 것이 온전함이요, 죄인까지 미워하는 것은 완전함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감히 완전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우리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온전하라고 하실 뿐.
도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온전함에 있지, 완전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 말은 도와 우리가 소통할 여지가 있어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곧 온누리에, 그리고 우리 안에 도가 작동하는 원리이지요.
62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제 62 장
도는 만물을 감싸주니
착한 사람의 보배요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은신처가 된다.
번지르한 말솜씨도 장사하는 데는 값지고
거들먹대는 행동도 아주 보탬이 없지는 않다.
사람이 착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그를 버리겠는가?
그러므로 임금을 세우고
높은 관직을 임명할 때
비록 큰 구슬을 화려한 수레 가득 바친다 해도
가만히 앉아 도를 일러주는 것만 못하다.
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무엇인가?
도로써 구하면 얻을 수 있고
죄를 지었어도 도로써 면한다는 말이 있으니
그래서 도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