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64/3장)
간밤에 꽃 세 송이를 구하기 위해 천지를 헤매고 다니는 꿈을 꿨습니다. 천지는 아니고 호주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제가 살던 곳이니까요. 꽃집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꽃을 살 돈도 부족하고(두 송이 값밖에 안됨), 꽃 사러 가는 길을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이 황량한 벌판을 두려움과 간절함 속에 방황하다 깼습니다.
오늘 살필 구절을 펼치다 깜짝 놀랐습니다. 꽃 세 송이가 여기 있네요. 제가 찾아 헤맨 꽃은 성인(聖人)이 되는 꽃이었던 것이죠. 욕심을 없애고, 귀하게 여기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배우지 않음을 배우는 세송이 꽃.
양승국 /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변호사
어제 대통령 취임식을 통해 세상이 추구하는 극치의 가치 중 하나를 보았습니다.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는 것. 사람들이 모두 나를 알아주는 것. 그것처럼 기분 삼삼한 일이 있을까요.
누군가는 권력을, 누군가는 명예를, 누군가는 돈을, 누군가는 인기를 쫓으며 욕심을 부리고 남보다 귀함을 받고 싶어하지요. 저는 글로써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평생 그것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 거지요. 간밤 꿈과 달리 현실의 제 모습은 성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금수저 부자 청년이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냐고, 구원을 받을 수 있냐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그 돈보따리를 내려놓으라고 하셨죠.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시며. 비유가 죽여주죠.^^ 청년은 결국 못 내려놓지요. 천국보다는 이 세상을 택한 거지요. 누군가는 권력을, 누군가는 명예를, 누군가는 인기를 내려놓지 못함으로써 천국을 포기합니다. 노자식으로 말하자면 성인되기를 포기합니다. 차라리 낙타가 성인되기 쉽겠죠.
그렇다면 정말 이렇게 살다 죽어야 할까요. 내가 죽도록 추구하는 그것이 정말 가치있는 일일까요. 제가 정말 로또 맞듯 유명작가가 되었다고 할 때 그것이 평생을 걸만한 일이었다고, 나는 성공한 인생이었다고 되돌아 봐 질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어차피 유명작가가 못될 거니까 여우의 신포도처럼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므로
성인은 욕심을 없애려는 욕심만 있으며
귀하다고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배우지 않음을 배우고
뭇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는 것으로 돌아간다
이렇듯 만물의 자연성을 도울 뿐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는다.
'배우지 않음을 배우고' 여기에 답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전에 먼저 그때까지 배운 것을 안 배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케네스 해긴이 <Right & Wrong Thinking ;옳은 사고 방식, 틀린 사고 방식>에서 한 말입니다.
저는 지금 성경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노자 말씀으로 하자면 '배우지 않음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비움을 배운다'고 할까요. 그 배움이 저를 진정한 길로, 옳은 사고로 안내할 것입니다. 도(道)로 돌이킬 것입니다. '뭇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는 것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그 새로운 배움이, 배우지 않음을 배우는 배움이 저의 무작정 유명해지고 싶은 충동적 욕구를 내려놓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세상과 영합하지 않는 진정한 글을 쓰게 할 것입니다. 제 본성에 맞는 글을 쓰게 할 것입니다. '이렇듯 만물의 자연성을 도울 뿐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건 그런 뜻이지요.
기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 드는 예로 아무리 곱게 굴어도 데님(청바지 천)이 비단되지 않습니다. 될 필요도 없구요. 다만 데님은 최고의 데님이, 비단은 최고급 결의 비단이 될 수는 있습니다. 성품은 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무위로 하면, 도로써 하면 타고난 본성이, 자연성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습니다. 본래의 기질에 기초하여 성품을 다듬어 가자는 것이 노자의 '성인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려면 간밤의 제 꿈처럼 세 송이 꽃을 찾아가야 하는 거지요. 욕심을 내려놓고, 세상이 귀하다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배우지 않음을 배우는.
64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제 64 장
안정되어 있을 때 유지하기 쉽고
조짐이 드러나기 전에 도모하기 쉽고
무른 것은 녹이기 쉽고
미세한 것은 흩어버리기 쉽다.
아직 드러나기 전에 처리하고
혼란해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작은 싹에서 나오고
구층의 누대도
한 줌 흙으로 올라가며
천리 길도 발밑에서 시작된다.
인위로 하는 자는 실패하고
집착하는 자 잃을 수밖에 없다
성인은 작위가 없으니 실패가 없고
집착이 없으니 잃는 일이 없다.
사람들이 일을 할 때 보면
항상 다 될 무렵에 실패한다
처음 시작 때처럼 마칠 때도 신중하다면
일을 그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욕심을 없애려는 욕심만 있으며
귀하다고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배우지 않음을 배우고
뭇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는 것으로 돌아간다
이렇듯 만물의 자연성을 도울 뿐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