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 65/2
엊저녁 어느 주간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도덕경 풀이를 자기들 신문에도 해 달라는. 저의 '하루보듬' 도덕경이 '한주보듬' 도덕경이 되어 자생서당의 문턱을 넘게 되나 봅니다. 고전을 대하는 저의 모토는 일상에,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안 그러면 따분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가성비 제로'의 독서일 뿐이지요.
제가 혼자 된 후 지난 10년 간 약 1천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노자도 그때 읽었지요. 노자뿐 아니라 장자, 공자, 맹자, 손자, 한비자까지 읽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프로이드, 융 등등 죄다 읽었습니다. 왜 읽었겠습니까. 할 일도 없고, 돈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지요.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할 일도 생기고, 돈도 생기고, 친구도 생겼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더니 그 힘이 제 삶에 작용했던 거지요.
그런데 아는 것이 병이라더니 병도 생겼습니다. 가만보니 언제부턴가 이론에 실상을 껴맞추고 있더라는 거죠. 가령 사람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분석을 하면서 판단내리는 따위의 일. 그러니까 몸에 옷을 맞추는 게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는 격이랄까요? 그러면 헛똑똑이가 되기 쉽습니다. 노자가 말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그래서 어제 뭐라고 했습니까.
지혜를 붙잡으면 망하고 지혜를 놓아버리면 흥한다고 했지요. 이 두 가지를 깨닫는 것이 곧 하늘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며, 그 이치를 아는 것을 덕이라고 하네요. 그것도 '그윽한 덕'이라고. '그윽한 덕'은 내일 살펴보겠습니다.
이 두 가지를 깨닫는 것이
하늘의 법도를 깨닫는 것이다.
이 법도를 아는 것을
그윽한 덕이라고 한다.
이때의 지혜란 어떤 지혜인가요? 나 잘났다는 지혜, 나만 챙기는 지혜, 남 이기겠다는 지혜, 교활하게 머리 굴리는 지혜, 남 속여먹는 지혜 등이죠. 삶을 머리로 사는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하면 국민도 그에 대응하느라 '맞지혜'를 짜내게 되겠죠.
그러면 덕이란 무엇일까요. '나, 나, 나'에서 '우리, 우리, 우리'로의 전환입니다. 매사 나밖에 모르던 사람이 주변을 둘러보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 마음, 하늘의 법도라는 거지요. 기독교의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그것이 덕입니다.
제가 지인께 공유받아 지인들께 공유한 <우리>라는 성가가 있습니다. 듣고 또 들어도 매번 전율이는 감동을 주지요. 저는 들을 때마다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립니다. 그 가사에 단어 몇 개만 바꾸면 노자의 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고전 중에서 노자 생각이 예수 생각과 가장 닮았지요. 도의 작용은 성령의 그것과 아주 흡사합니다.
좀 길지만 소개해 볼게요. 빨간 색 글자는 원래 가사입니다.
'우리'를 들으면서 오늘 마칩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재열
외로움도 견뎌나가겠소
바보란 소릴 들어도 좋소
날 비웃는 그 비웃음들을
도(주)의 사랑으로 받아주겠소
이 모든 것이 힘들다는 것을
노자(주님)는 내게 알려줬소
노자(주님)의 사랑은 너무나 많고 크오
그래서 나는 살아가겠소
우리 모두 손을 내밀어서
넘어진 형제 일으켜 주세
사람이 살면 한 번 사는 것을
걸음 멈추고 생각해 보세
이 시냇물이 강으로 흘러서
저 바다와 하나가 되듯이
도(주) 안에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오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오
우리모두 손에 손을 잡고
저 험한 벌판 걸어가 보세
가다보면 폭풍도 지나고
캄캄한 밤도 지나갈 거요
높은 산을 오를 때도 있소
푸른 초원도 지나갈 거요
서로가 위하고
서로가 사랑하면
이 모든 것 이겨나갈거요
지금까지 우리 한 말들은
그냥 하는 말들이 아니요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쁜 것은
도덕경(성경)에서 배웠잖소
오죽하면 우리 형제들이
여러분께 호소를 하오
지금도 모든 것 늦지는 않았으니
우리는 하나가 돼야하오
(중략)
도(주) 안에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오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오
제 65 장
옛날, 도를 잘 실천한 지도자는
백성을 똑똑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어수룩하게 하고자 했다.
나라를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백성이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해치는 것이니
지혜로 다스리지 않는 게
나라의 복이 된다.
이 두 가지를 깨닫는 것이
하늘의 법도를 깨닫는 것이다.
이 법도를 아는 것을
그윽한 덕이라고 한다.
그윽한 덕은 깊고 아득해서
사물의 이치에 반하는 것 같지만
결국 도에 크게 순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