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찍소리도,
악소리도 안 내는 이유

하루보듬 도덕경(65/3장)

by 신아연

저는 요즘 겁나는 것이 없습니다. 왠 잘난 척이냐고요? 그래서가 아닙니다. 그럼 못난 척 하는 거냐고요? 그래서도 아닙니다. 그럼 무슨 용각산 광고냐고요? "이 소리도 아닙니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제 세대 이상에서는 익숙하게 들어 온 광고 문구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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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용각산 비슷한 상태입니다. 어떤 일에도 순응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소리내지 않는, 명확히는 '내소리'를 내지 않는, 찍소리, 악소리 않는 훈련을 받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해도 겁이 안 나는 거지요. 예전처럼 말이 땅에 떨어져 흙이 묻을새라 가파른 논쟁을 하거나 살벌한 혀칼로 난도질하는 짓을 아예 관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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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ker-Free-Vector-Images, 출처 Pixabay


그렇다고 "그래, 니 똥 굵다, 똥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으로 상대를 깡그리 무시하거나 귀를 닫고 마음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하시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만. 제가 오해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잘 배웠습니다." 이런 태도를 진정으로 갖게 되면서 누구를 만나도 겁이 나지 않는 거지요.


진작에 이렇게 살았다면 이혼도 안 했을 것 같아요. 욕하면 듣고 때리면 맞고(는 계속하면 안 되겠지만), 여하튼 그런 남편을 관찰하는 여유는 있었을 테니까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 수밖에 없을까 하고. 거기에는 내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맞관찰' 즉 자기성찰이 함께 있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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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현덕(玄德)'을 배웁니다. 깊고 아득한 덕입니다. '현(玄)'자가 그런 의미라고 전에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천자문에서는 '검을 현'이라고 가르치지만, 까맣다는 뜻이 아니라 어둑하고 아득하고 가물가물하고 아리까리하고 아무튼 뭔가 확연히, 선명히, 석연히 드러나지 않는 묘한 상태를 묘사하는 글자입니다.


'현관(玄關)' 할 때 이 '현'자를 씁니다. 집안에서 현관은 보통 어둑하지요. 현관에 환한 등을 달아 놓는 집은 거의 없지요. 또한 현관은 나가는 곳도 되고 들어오는 곳도 되지요. 오후 3시 무렵 현관에 우두커니 서있으면 외출 후 들어오는 사람인지 막 나가려는 사람인지 그 자체로는 구분이 안 되잖아요.


현덕도 그런 상태입니다. 눈뜨고 있어도 코 베어갈 세상, 빠꼼이로 살아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혼자 바보되고, 엉거주춤하면서 남들과는, 대세와는 거꾸로 가는 것 같지요. 노자가 '사물의 이치에 반하는 것 같다'고 하듯이.


그윽한 덕은 깊고 아득해서

사물의 이치에 반하는 것 같지만

결국 도에 크게 순응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안 살고 싶으면 그렇게 안 살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았을 때 그 결과가 어떻다고요? '도에 합한 모습'이 될 거라는 거지요. 우리는 '순리(順理)'라는 말을 좋아하지요. '순리대로 된다, 순리대로 산다'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현덕을 실천하면 순리에서 한 발 더 나가 '대순(大順)'하게 된다잖아요. 만사형통하게 된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 현덕을 실천하는 방법은 '자기 생각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노자가 '지혜를 버리라'고 하듯이. 저는 제 머리 속의 지난 10년간의 천 권 지식을 빼내고, '배우지 않음을 배우'며 대순하고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몸부림'이라고 했지만 그 방법은 순종입니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다만 그 목소리를 듣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65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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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 장


옛날, 도를 잘 실천한 지도자는

백성을 똑똑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어수룩하게 하고자 했다.

나라를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백성이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해치는 것이니

지혜로 다스리지 않는 게

나라의 복이 된다.


이 두 가지를 깨닫는 것이

하늘의 법도를 깨닫는 것이다.

이 법도를 아는 것을

그윽한 덕이라고 한다.


그윽한 덕은 깊고 아득해서

사물의 이치에 반하는 것 같지만

결국 도에 크게 순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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