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작가님이 스위스 안락사에 다녀오신 글을 어떻게 쓰실까 걱정 반, 기대 반입니다. 쓰기에 무척 어려운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먼저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어떤 방향이든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니까요. 따라서 글의 방향을 확정하기가 참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독자로부터 어제 이런 글을 받았습니다. 내 마음 잘 알아주는 친구라도 만난 양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바로 그 글의 방향 때문에 출간을 포기할 생각도 했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생각한다면 안락사를 긍정하는 쪽으로 써야 하는데 제가 스위스를 다녀온 후 그만 하나님을 만나버렸습니다. 그러니 안락사를 반대하는 쪽으로 쓸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그렇게 되면 돌아가신 분과 유족들께 미안하여 책을 내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망치를 가지면 뭐든 두드리고 싶어지듯이, 글쟁이로서 이보다 더 솔깃한 글감이 없다보니 버리기에는 솔직히 너무 아까운 거에요.
그러던 차에 안락사를 택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제 앞에 속속 나타났지요. 스위스 조력사 행 절차를 도와줄 수 있냐는 문의를 포함하여. 그런 일이 생기면서 생각의 방향이 급선회했습니다. 이분들의 마음을 돌려야 하고, 이분들의 영혼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저를 만나주셨다는 확신이 듭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글의 방향을 확실히 잡아주시기 위해. 안락사 반대의 글을 쓰게 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락사 동행기를 쓰는 동안 극심한 안구건조증으로 3개월 이상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도중에 컴퓨터가 고장나기도 했구요.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시간 벌기, 시간 끌기'였던 것 같습니다. 제 글의 방향을 돌리기 위한.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 글을 쓰는 내내 무겁고 고단합니다. 이렇게 힘든 글은 처음입니다. 몸도 아픕니다. 죽음의 그림자와 다퉈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어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다지고 또 다지며 나갑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면 반향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주 오랫 동안, 어쩌면 영원히. 마치 신과 사탄의 대결처럼."
© SamuelFrancisJohnson, 출처 Pixabay
안 믿는 여러분, 만약에 말이지요, 죽은 후 천국이 정말 있으면 어쩌실 겁니까. 확률은 반반입니다. 있거나, 없거나. 저 같으면 있다고 믿겠습니다. 있으면 가는 거고 없으면 말고죠. 안 믿어서 손해나지 믿어서 손해날 건 없잖아요. 없다고 믿었는데 있으면 어쩔 거냐는 거죠. 손해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런데 자살하면 천국 못 갑니다. 안락사는 자살입니다.
오늘 아침 사도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격려하십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고린도후서2;16>
하나님께서는 제가 '생명의 냄새'를 감당하도록 부르셨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20;24>
사명에 붙잡혀 목숨조차 초개로 여기며 달려갈 길 다 달렸다는 사도바울의 고별 설교, 지상 마지막 고백이, 세상 떠날 때 저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생명 살리는 글, 영혼 구원의 글을 쓰는, 달려갈 길 다 달리는 사명자로 살다 죽겠습니다.
독자 한명진 님의 정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