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있으면

하루보듬 도덕경(66/1장)

by 신아연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날씨가 더워지고 있네요.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볼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잘 알까, 남이 나를 잘 알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지금까지 저는 남보다 내가 나를 더 잘 알고, 내가 생각하는 내가 옳은 나라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는 나 자신과 밤낮 함께 살지만, 남은 나를 어쩌다 보니까요. 그러니 내가 나를 더 잘 알 수밖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은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 그걸 느끼냐면 내 속에 모종의 리더십을 발견할 때 입니다. 목동 시절 다윗처럼 저한테는 정말 없는 자질이거든요. 학교 때 반장을 시키면 죽을 맛이었죠. 아무튼 남 앞에 서는 건 당최 싫습니다. 그런데 오늘 66장을 가만히 읽어보니 지금 내가 이런 류의 리더십을 훈련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함께 읽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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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작가의 '심상'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 위에 있고자 하면

반드시 말로 자기를 낮춰야 하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하면

반드시 몸을 뒤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성인은

백성 위에 있어도

그들이 무거워 하지 않고

백성 앞에 있어도

그들이 해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온 세상이

그를 기꺼이 받들며 싫어하지 않고

겨루지 않기 때문에

천하에 아무도 그와 겨룰 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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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제가 과대망상으로 맛이 갔다고 염려하진 마세요. 중증 치매도 아니고, 설마 나라의 리더, 천하의 리더가 되겠다는 망상을 피우겠습니까. 제 뜻은 '섬기는 리더십'을 배워 단 한 명이라도 섬겨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내 속에 그런 자질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껏 나는 몰랐지만 남들은 내게서 그걸 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기도 동역자들이 '빡세게' 함께 기도해 주시지요. 자기 문제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의 리더가 되라고. 최소한 가족과 친척, 자생 독자들을 섬기라고.


그 훈련과 기도는 낮추는 자세입니다. '낮추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낮아지는 겁니다.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훈련입니다. 물처럼 겸손하고 어디서든 화평케 하며, 남을 세우고 나는 뒤에 서는 훈련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훈련받는 과정을 보십시오. 섬기는 리더십의 전형이지요.


그것은 사랑을 체화하는 과정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허다한 허물을 덮고 나 중심성, 나의 유익에서 빗겨서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할 수 있습니다. 마치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물을 받아들이듯이.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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