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68/2)
68장 시작합니다.
훌륭한 지휘관은 무용을 앞세우지 않고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은 쉽게 화내지 않고
이기기를 잘 하는 사람은 적과 맞붙지 않고
사람을 잘 부리는 사람은
그 사람 밑으로 내려간다.
67장에서 '나무로 만든 닭' 이야기를 했지요. 내용이야 다들 잘 아시겠지만 중요한 건 실천이지요. 어떤 상황에 딱 맞닥뜨렸을 때 과연 '목계(木鷄)'가 될 수 있냐는 건데요, 이게 되면 도인이자 성인이지요. 그러니 어차피 나는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노력해 보는 겁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되는 자신을 볼 때 그보다 더한 희열이 어디 있나요. 누군들 뱃속부터 도인이고 날때부터 성인이었겠습니까.
하재열
옛날에 닭싸움을 좋아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싸움에 내 보내기 위해 닭 한 마리를 훈련시킬 것을 명령하고 열흘 후에 물었습니다. 훈련사는 "아직 멀었습니다. 날뛰면서 혼자 쎈 척 허세를 부릴 뿐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68장의 첫 구절처럼 무용을 앞세우는 거지요.
다시 열흘이 지났습니다. "이제 어떤가?"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가 나거나 그림자만 봐도 달려들려고 합니다." 두 번째 구절처럼 쉽게 화를 내는 거지요. 싸움의 달인과는 거리가 멀죠.
또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습니다. "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 가까이에 가면 노려보면서 지지 않으려고 용을 씁니다. 눈초리가 여간 사나운 게 아닙니다." 세번 째 구절에 나오듯 적과 맞붙는 거지요. 이래서는 진정으로 이길 수가 없지요.
그뒤 열흘이 다시 지나 "지금쯤은 어떤가? 싸울 만한가? "라고 왕이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훈련사는 "이제 됐습니다. 다른 닭이 소리쳐도 꿈쩍도 않으며 어떤 상대에게도 동요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니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닭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해 진 것이죠. 다른 닭은 감히 그 앞에서 싸워 볼 생각도 못하고 부리를 감춥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상대를 만나도 동요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을 '목계의 덕'이라고 합니다. 극도로 강하게 훈련되어 내공이 갖춰지면 초연한 경지에 이르러 존재 자체로 최강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이기는 것이 진짜 이기는 것이죠. 천하무적인 거죠. 나아가 사람을 잘 부리는 사람, 범위를 확장하여, 사람을 품는 사람은 그 사람 밑에 서는 사람입니다. 이거 누가 제일 잘 합니까? 네, 예수님이죠. 예수님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 밑에 섭니다. 'understand'하십니다. '이해'를 하십니다. 밑에 서는 것, 'under-stand'가 곧 이해입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면 그 사람이 곧 내 사람 아닌가요.
그런데 투계 훈련사가 어떻게 닭을 그 경지에까지 올려놓았는지 궁금합니다. '닭대가리'라는 말처럼 머리 나쁜 닭에게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썼던 걸까요? ^^
내일 계속하지요.
하재열 작가의 '심상'
제 68 장
훌륭한 지휘관은 무용을 앞세우지 않고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은 쉽게 화내지 않고
이기기를 잘 하는 사람은 적과 맞붙지 않고
사람을 잘 부리는 사람은
그 사람 밑으로 내려간다.
이것을 겨루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사람을 쓰는 능력이라 하고
이것을 하늘과 짝함이라 하니
예로부터 내려오는 도의 지극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