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0/1장)
맹렬한 더위 속에서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와 재혼한 이래 생활이 송두리째 그분과 함께 돌아가기 때문에 교회에 가는 것 외엔 따로 잘 보낼 주말이 없으니 따로 드릴 말씀도 없네요.
성경공부를 다양하게 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상당히 높은 지적 수준을 요구합니다. 세련된 지성을 도구로 영성의 광맥에 접근하는 거지요. 그런데 그건 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습관적으로 지적 연료를 소모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내가 웬만큼 배운 사람이라서 이 공부를 따라가고 있다는.
같은 공부를 하는 분 중에 초등학교도 졸업 못한 70대 어른이 계십니다. 지도 전도사님 말씀이, 배움이 없는 분이 단단한 영의 음식을 소화시키는 걸 보면서 영의 음식과 혼의 음식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저또한 깨달음이 왔습니다.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 지성은 누구에게나 갖춰져 있다는. 따라서 과도한 지적 접근은 불필요할뿐 아니라 자칫 나의 기존 지식이 뒤엉키면서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하재열 작가의 '심상'
더불어 오늘 시작하는 70장 노자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 말은 알기도 참 쉽고
실천하기도 쉽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알지 못하고
실천도 못한다.
진리가 어렵다면 진리가 아닐테지요. 육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필수 요소인 햇볕, 공기, 물을 접하는 것이 용을 써대야 하는 일이라면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것들은 그저 주어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살이의 도리, 진리 접근이 몇몇 특수한 사람들로 제한되어 있다면 우리 대부분은 짐승 수준이 되었을 테지요. 그러니 쉬울 수밖에 없고, 진짜로 쉬운데, 내 말을 도무지 알아듣질 못하는 구나, 그러니 실천도 못하는 구나 하고 노자는 탄식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는 것도, 실천도 어려운 게 아니라 알기는 쉬운데 실천이 어렵지 않나요? 또 그런데 말입니다, 알긴 아는데 실천이 안 된다면 엄밀히 말해 아는 게 아니지요. 가령 오밤중에 라면을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안 먹어야 진짜 아는 거잖아요. 근데 먹잖아요. 그러니 제대로 안 게 아니지요.
그러면 왜 이다지도 안될까요? 왜 알지도 못하고, 실천도 안 될까요? "나는 어차피 안돼.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하지 말고 왜 안되는지 곰곰 생각해 봐요, 우리. 이렇게 말하는 저도 물론 안됩니다. 하지만 안 되는 이유라도 알자는 거지요.
왜 안되냐면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보질 않아서 그렇습니다. 한 번도 나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가령 단체 사진을 찍었을 때 단 한 번이라도 나를 먼저 찾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요? 단 둘이 찍어도 내 얼굴부터 찾지요. 내가 잘 나왔으면 사진이 잘 나온 거고, 내가 못 나왔으면 그 사진은 버린 사진이죠.
그처럼 단 한 순간도 자신을 객관화시키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고의 중심축을 이동할 수 있어야만 노자의 말씀도, 예수의 가르침도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노자는 '말에는 근본이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다'라고 표현합니다.
내일 계속할게요.
고맙습니다.
제 70 장
내 말은 알기도 참 쉽고
실천하기도 쉽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알지 못하고
실천도 못한다.
말에는 근본이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하기에
나를 알지 못한다
나를 아는 자 드물고
나를 따르는 자 귀하다.
그러기에 성인은
베옷을 걸쳤지만
속에는 옥을 품고 있다.
하재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