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1/2장)
제 71 장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건강하며,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이 병이다.
병을 병인 줄 안다면
병이 되지 않는다.
성인은 병이 없으니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병이 없다.
'앎'에 대해 어제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자각', 즉 '자기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공자의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공자는 제자들에게 "죽음에 대해서는 묻지 마라, 나는 모른다."라고 선을 딱 그었을 테지요. 모호하고 섣불리 아는 것은 앎이 아니라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선을 명확히 했던 것이지요. 지와 무지에 대한 정직한 태도입니다.
또 어떤 앎이 있을까요? 오늘 한 가지 더 살펴보지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앎'이 있습니다. 이 단계가 가장 심오한 앎입니다. 도가 실천되어 온전한 덕을 이룬 단계지요. 자기가 알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앎, 예를 들어, 자신의 행위가 선행상이나 표창장 받을 만한 일이라는 자각조차 없을 때,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를 때(비유가 죽이지요?ㅎ) 덕성으로는 최상이라는 거지요. 앎 중의 앎, 도를 앎입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한 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칭찬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저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라고 말하며 유유히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자기가 얼마나 착한 일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인 거지요. 그러기에 온전하게 아는 것이죠.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머리의 앎과 그래서 도왔다는, 그 앎의 실천이 일치되었으니까요.
흥부가 제비 다리 고쳐주는 상황도 그와 같죠. 아무 대가를 바란 바 없이(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한 흥부라지만 그깟 미물한테 무슨 대가를 바랐겠습니까) 그저 측은지심이 우러났을 뿐이죠.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앎', 다른 말로 '온전한 덕의 실천' 비슷한 것을 저도 행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조차 없었는데 '그거 무지 착한 일, 신아연 씨의 높은 덕성'이라고 나중에 다른 사람이 말해 줘서 알았으니까요. 낯간지럽네요.^^
뭐냐면, 제가 호주 집을 나올 때, 남편이 혼자 살아갈 걸 대비해서 1년 치 '단도리'를 해주고 나오느라 가뜩이나 빈손으로 나오는 판에 빈손 중의 빈손이 되었던 거지요. 결혼 패물, 심지어 애들 돌반지도 그대로 놓고 나왔으니 처음 몇 달은 꼼짝없이 굶다시피 했던 거죠.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집 나가는 아내'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잘 했다 싶어요.
하재열
사람의 도리를 '알기에', 그것을 실천해놓고는(앎과 행의 일치= 완전한 앎), 그랬다는 것조차 모르는, 그게 바로 '덕'입니다. 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로써 세 가지 앎을 생각해 보았는데요, 내일 또 하나의 앎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