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1/5장)
저, 다시 글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염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참 고맙습니다. 간밤에 광장을 헤매는 어수선한 꿈을 꾸었지만 깨어보니 저의 작은 방이네요. 두려움과 불안이 빚어낸 망념 속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따금, 아니 자주 절망하는 것은 '나'에 대해 눈곱만큼도 벗어나 있지 못하는 자신을 볼 때입니다. 오직 나밖에 모를 때입니다. 몸이 아프면 그 '나'를 극대화하게 되지요. 몸 아픈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습니까. 며칠 나밖에 몰랐더니 완전히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 나는 원래 나밖에 모르는 아주 아둔하고 이기적이며 나쁜 사람인 것 같은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재열 작가의 '심상'
돌아와 보니 71장을 아직도 하고 있네요.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는 중이었지요. 그게 병이라면서.
56장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을 하면서 나왔던 말이지요.
화광동진이 무슨 말인가요? '빛을 낮추고(화광) 티끌과 하나된다(동진)'는 뜻이지요. 쉽게 말해서 '눈높이를 맞춘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수준에 따라 내려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빛 그 자체라 사람이 직접 보게 되면 눈이 부셔서 눈이 멀게 되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 수준으로 빛을 다운시키고 먼지 같은 속세의 기준에 맞춰 오셔야 했지요. 굳이 안 오셔도 되지만 인간을 너무 사랑하시니까.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죠. 화광동진의 화신이신 거지요. '성육신=화광동진'입니다.
이 얘기를 왜 합니까.
어떤 설명을 할 때 상대가 알아듣게 하지 않으면, 상대만 모르는 게 아니라 실상은 나도 모르고 하는 소리란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그 사실을 안다면 함부로 말하지는 않겠지요. 내 말을 왜 못 알아 듣냐고 윽박지르지도 않겠지요. 그 또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병에 속하니까요.
성경에는 화광동진에 해당하는 버전이 있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다'- 화광동진이지요. 참지혜입니다. 성인은 매우 지혜로워서 상대의 수준에 맞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습니다.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다면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쯤돼야 '안다병'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지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안다병의 또다른 사례를 살피지요.
고맙습니다.
하재열
제 71 장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건강하며,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이 병이다.
병을 병인 줄 안다면
병이 되지 않는다.
성인은 병이 없으니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병이 없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687] 하루보듬 도덕경(71/5장)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되기|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