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하루보듬 도덕경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주말에 저는 책장의 책을 여러 권 솎아서 버렸습니다. 몇 주 전에도 그랬으니 도합 한 100권 내다 버린 것 같네요. 주로 인문 서적, 그리고 소설류였습니다. 소설은 자리를 차지하니까 그랬고, 인문학 계통 책은 이제 제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계속해서 인문적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는 있지만 제 삶에는 더 이상 들여놓고 싶지 않습니다.
인문(人文)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고 합니다만, 그 무늬를 밤낮 들여다봐야, 함께 그려가봐야 내 인생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이 왔기 때문입니다. 삶을 새롭게 살아갈 힘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쁜 습관 하나도 바꿀 수 없었고, 타성에 젖어 사는 모습도 여전했습니다. 말은 그럴듯하고, 겉은 번지르했지만.
저는 인문적인, 너무나 인문적인, 태생 자체가 인문적인 사람이라 손가락의 지문 마냥, 인문의 지문을 뇌세포 마다마다 아로새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갈수록 교만하고 오만하고 아상만 강화되었을 뿐.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말은 허구이자 허상이었습니다. 그렇게 건방진 착각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 꼬라지로 사는 거지요. 주인은 무슨 개뿔! 그게 바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실체입니다. 인간의, 인류의 반복 패턴입니다.
'인문'이 곧 '인본'과 동의어는 아니지만, 제가 살아온 궤적으로는 동일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뼛속까지, 뱃속까지 인본주의에 물들어 살던 제가 어느 날 <도덕경>을 만났습니다.
제가 본 도덕경은 인본과 신본의 중간 영역, 경계 쯤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리가면 인본역, 저리가면 신본역이랄까요? 어디로 갈꺼나, 터미널에 나와 있는 느낌이었지요, 적어도 제게는.
이해가 깊어질수록 노자의 도를 기독교의 진리로, 도의 작용을 성령으로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도는 하나님 사랑, 덕은 이웃 사랑으로 기독교적 핵심 가치와 선긋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도덕경은 '인문(人文)'으로도 '신문(神文)'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심리학에서 착시 현상으로 다루는 '오리냐 토끼냐', '노파냐 젊은 여자냐' 하는 그림이 연상되었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도덕경 풀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