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저는 어제 서울대 인근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폭우를 만나 속옷까지 완전히 젖어서 돌아왔습니다. 우산도 소용이 없어지자 버스를 타고 돌아오려고 해도 물이 줄줄 흐르는 몸으로는 그 또한 민폐이니 걸어올 수밖에 없었지요. 비의 기세가 점점 더 심상치 않아지면서 무사히 집에 돌아온 것만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밤새 동네 하천이 범람하여 이재민들이 발생했다는 소식이네요. 물이 불보다 무섭다더니...
하재열 작가의 '심상'
어제 글에 한 독자께서 본인은 도덕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불교와 맞닿더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기독교적으로 다가온다고 한 말에 대해 이견을 주신 거지요. 그분 말씀이 옳습니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올 때 도교에 깃대어 들어왔으니까요.
제 아이들이 서너 살 때 한국에서 눈을 처음 보고는 “엄마, 밖에 누가 설탕을 잔뜩 쏟아놨어!” 이러는 거예요. 남반구 호주에서 한 살도 안 된 때부터 살다가 태어나 처음 눈을 봤으니 눈이 흰설탕 같다는 반응이 나온 거지요.
불교가 중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그와 같았지요.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제 아이들이 설탕으로 눈을 이해했듯이. 가령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空)’을 노장사상의 ‘무(無)’ 로 이해시키는 거지요.
하지만 공과 무는 다른 개념입니다. 공은 '일체가 이것이다, 이러하다' 라고 말할 어떤 정체된 것이 없다는 뜻이며, 무는 유와 대비되는 게 아니라 무가 유의 기능을 함께 하는, 유무가 상생한다는 의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그릇의 빈 공간이라는, 바로 그 없음(무)이 쓸모라는 있음(유)으로 작용한다는 거지요. 그릇 속이 꽉 차 있어봐요. 그릇으로 기능할 수가 없잖아요. 방이 물건으로 완전히 들어차 있으면 그 방은 더 이상 방으로 쓸 수가 없지요. 다른 공간을 찾아야 하지요. 방은 비어 있음으로(무) 사용(유)이 가능하지요.
이렇듯 공과 무는 다른 뜻입니다. 설탕과 눈이 다르듯이.
물론 공과 무를 이 한 가지 예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또 그 이야기를 하려면 너무 길어질 뿐더러 공과 무는 각각의 핵심 사상이니만큼 불교와 도교를 전부 다 말해야 하니 이쯤해 두지요.
그런 식의 불교를 ‘격의(格義)불교’라고 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개념으로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 그러다 보니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을 테지요. 아주 엉터리 같은 소리도 있었을 테고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나중에 '구마라집'이라는 인도의 승려가 불교에 대해 정확한 번역을 하게 됩니다. 번역이 이래서 중요한 거지요. 잘못된 번역은 '반역'이라고 하잖아요.
구마라집
앗, 오늘도 72장 진도를 못 나갔네요.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컴퓨터 시원찮은 김에 여담을 하게 되네요. 이번주까지는 놀고 다음주에는 제대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694] 공(空)과 무(無), 눈과 설탕|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