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영 있나?

영혼의 PT(9)

by 신아연

어제는 흘러내린 토사와 뿌리 뽑힌 나무로 인해 집 앞 버스 정류장이 폐쇄되고 평소 다니던 시장이 온통 물에 잠겼습니다. 그제 지나온 길이라 더 놀라웠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신림동이고 반지하 방이 많아 어젯밤 늦게까지 친구와 지인들의 걱정어린 안부를 받았습니다. 저는 높은 지대에 살아 비 피해는 없습니다만, 한 동네, 옆 동네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너무나 참담하네요. 도림천이라고 신림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이 범람한 탓인데 어제 지나며 보니 인간의 아우성에는 아랑곳없이 저혼자 우당탕탕 흐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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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제 관악산과 서울대 앞을 산책한 후 '요리에 혼을 담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려던 계획이었는데, 비폭탄으로 인해 내 혼이 나갈새라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지요. 요리에 담긴 혼을 빼앗아 내 혼을 채워야 했던 상황에서 내 영은 어떠했는지를 돌아봅니다. 짜장면 대신 짜파게티를 먹으며.


저는 요즘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영과 혼을 나눠서 반응하는 새로운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반응한다'고 말한 이유는 '생각한다'고 하고 싶지 않아서지요. '생각한다'는 것은 벌써 혼적 표현이니까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혼의 생각입니다. 이 비에 휩쓸려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은 혼의 반응입니다. 반면 '아니야,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 거야.'하는 것은 영의 음성입니다. 위기 상황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다 잘 될거야.'하는 다독임은 영의 손길입니다.


저는 얼마 전 코로나에 걸려 며칠 고생을 했는데,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혼은 '백신 접종도 안 했는데 코로나에 걸렸으니 어쩌지?'라고 호들갑을 떨만 했지만 영이 혼의 깨방정을 미리 지긋이 눌렀던 거지요. '별 거 아니다, 회복될 것이다.' 하고요. 코로나로 인해 저의 육혼영이 한바탕 앓은 건 사실이지만, 왕언니이자 맏형 뻘인 영이 그 와중에서 균형을 잘 잡아줬던 거지요.


혼은 달리 덧붙힐 말이 필요없지요. 우리 삶이 혼으로 이뤄지니까요. 생각하고, 지식을 쌓고, 감정을 표현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을 하고. 눈에 보 모든 삶이 혼과 육의 일이지요. 그렇게99.999% 의 사람들이 혼만 작동시키며 삽니다. 머리만 굴리며 삽니다. 뇌로만 삽니다.


그 중에서 제가 닭살 돋아 하는 것은 시나 수필을 쓸 때 혼으로 끄적인 것이 주는 얕고 소녀취향적인 감상인데요, 저도 물론 영적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구분은 할 줄 압니다. 음식을 만들 줄은 몰라도 먹을 줄은 아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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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영향을 끼친 대단한 소설 중에서 혼적 캐릭터는 세밀히 분류했을 지언정 영적 캐릭터가 섬세히 묘사된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요. 심지어 도스트옙스키조차도 못했다고 봐요. 그 이유는 그가 혼적인 삶에서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의 무질서했던 일생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영의 가장 큰 특징은 질서 속에서 표현되는 것이니까요.


인간은 자기 눈높이 이상의 것을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다른 말로 혼에 갇힌 존재입니다. 혼은 세상 것밖에는 알 수 없습니다.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어합니다. 그게 혼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영은?


그 전에 영이 무엇인가요? 내 안에 영이 있기나 한가요? 있기는 있지요. 있는데 꼬리뼈의 흔적처럼 퇴화되어 작동이 안 되는 약한 상태나 아니면 악한 상태로 있지요.


내 안의 영 점검, 내일 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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