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PT(10)
창밖의 빗소리가 원망스럽게 들리네요. 반지하 침수 참변이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까이 일어난 터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곧장 가볼 수 있는 현장이고 이따금 지나다니는 곳이라 뉴스에서 접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이 떠나질 않네요.
혼비백산 (魂飛魄散)이라고 하지요. 혼은 정신적 에너지이며, 백은 몸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라 할 수 있겠지요. 혼은 넋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 혼이 날아가고(다른 말로 넋이 빠지고), 백이 흩어진 것을 죽음이라고 하지요.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에는 초혼( 招魂/ 혼을 불러들임) 장면이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돌아오라고, 돌아와 부디 다시 살아나라고 깃발처럼 흔들며 세 번을 외치는데요, 장례 의식의 첫 순서와도 같은 거지요.
혼은 일정 기간 머물다(49일) 제 갈 길로 가서 윤회 환생을 한다 하고, 백은 한 3일 정도 지나면 땅으로 스며듭니다. 유교와 불교가 혼합된 죽음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이지요. 몸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혼에 대해서는 종교에 따라, 문화에 따라 관념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어는, 말은 그렇게 안 해도 '혼을 영으로 인식'하는 거지요.
그런데 살아있을 동안에는 오직 이 세상 일에만, 육의 일에만 매여 있던 혼이 죽어서 육으로부터 분리되는 순간 영원한 무엇이 되어 천당도 가고 지옥도 가고, 아니면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는 건 논리적으로 안 맞지 않나요?
몸하고 한 평생 붙어살던 혼이 몸에서 빠져나왔다고 갑자기 차원 다른 곳으로 점프를 하다니요. 차라리 “죽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모든 정신 작용은 뇌 작용이니 뇌가 멈추면 아무것도 없다. 텔레비전에서 온갖 프로그램이 쏟아지지만 어쩌다 고장 나 버리면, 오래 써서 망가지면 그걸로 수명이 다해 더는 볼 수 없는 것처럼.” 이런 말이 오히려 논리적입니다.
사실상 혼은 육과 동의어입니다. 인간을 '영혼육' 삼분법으로 분류하지만, '영육' 이분법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이렇게 나눌 때는 육과 혼을 하나로 보고, 영만 딴 존재로 보는 거지요. 육을 움직이는 건 결국 혼이니까요. 육 자체는 고깃덩어리, 물질에 불과하니까요.
기왕이면 맛있는 걸로 먹자, 저 여자 한번 껴안고 싶다, 얄미운 저 녀석 한 대 때려주자, 이렇게 생각과 감정, 의지로 인해, 다른 말로 혼의 명령에 의해 몸뚱이는 움직일 뿐이니까요.
오늘 좀 장황하고 지루했는데요, 영이 뭔가, 혼과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혼과 영을 분리하고 나서야 영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살필 수 있으니까요. 갈 길이 너무 멉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