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6/2장)
어제 또 다른 목사님께서 깊이 공부할 만한 도덕경을 추천해 달라고 하셨습니다(우리 자생서당에는 목사님이 여섯 분 계시죠). 시중에 나와있는 도덕경이 하도 많아서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다시며. 저처럼 우스꽝스러운 소리 말고 학자의 정통 풀이를 접하고 싶으신 거겠지요.
도덕경은 인문서입니다. 혼적 서적입니다. 그러나 혼과 영의 경계에 서 있는 혼적 서적입니다. 영성에 바싹 붙어 있는 혼적 서적, 그러나 영적 서적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영성으로 풀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문적 해석이 주류를 이루는 도덕경을 저는 덕경이 시작되는 38장부터 영적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 38장부터냐? 그야 제 시선이 변해가서 그렇지요.
특히 오늘 살펴볼 구절은 다분히 영적입니다. 어떤 독자가 '혼성, 영성 그 차이를 명확히 알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금 하고 있는 '목요영혼의 PT'를 잘 따라오시면 구분하게 되실 거예요.
하재열 작가의 '심상'
군대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부러진다.
세계를 제패하겠다고 설친 군사력 중에 패하지 않은 것이 있나요? 로마군, 몽고군, 영국군, 베트남 전의 미군, 일본군 등 모두 제 잘난 줄 알았지만 강한 나무처럼 부러지고 무너져 내렸지요.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지요. 우리는 누구나 강한 사람, 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없어서 못 가지지 얻을 수 있다면 왜 마다할까요. 나 자신은 이러면서 '군대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부러진다'는 도덕경 구절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순적 행동을 하지요.
결국 에고, 자아의 문제입니다. 국가적 에고와 국가적 자아가 팽창하면 세계 정복이라는 집단 광기가 번들대고, 개인의 에고, 개별 자아가 완고해지면 주변 사람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너와 나는 다르다 못해, 적이지요. 나와 생각이 다르면, 내 맘대로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면 가차 없지요. 집단과 개인의 차이만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아는 죽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죽지 않습니다. 이따금 죽은 척을 해서 진짜 죽은 줄 알았는데 언제 보면 부활해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모든 몸부림도 실은 자아와의 싸움입니다. 자아 죽이기. 급기야 기독교인이 되고 나서야 '자아를 죽이는 확실한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바로 자아가 죽나요? 김치 담그는 레시피를 알았달 뿐 김치는 이제부터 담궈야 하는 거지요.
노자도 그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아를 죽였을 때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 76장 마지막 구절을 통해. 내일 살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76 장
사람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지며
초목도 살아 있으면
보드랍고 연하지만
죽으면 마르고 뻣뻣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현상이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현상이다.
군대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부러진다.
단단하고 강한 것은 아래에 놓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