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6/3장)
엊그제 글에 한 독자와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원만한 부부관계를 원하지만 그게 잘 안되는데, 그 원인이 자신의 자기중심성, 완고한 자아 탓인 줄 알지만 그게 또 내려놓아지지를 않는다네요.
자아는 원래 놓아지지 않습니다. 흔히 '다 내려놓았다, 마음 비웠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도 안 내려놓아지고, 하나도 안 비워지지요. 우리 솔직해져요. 제 말 맞잖아요. 내려놓은 척, 비운 척만 하잖아요.
자아충만자는 자존심 끝판왕의 모습이지요. 가정만을 놓고 본다면 배우자는 물론 자녀, 궁극에는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자기를 붙잡고 있지요(남의 집 아니고 제 집구석 이야깁니다). 마치 암세포처럼 자아는 존재가 죽을 때 비로소 같이 죽지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죄가 바로 이 자기중심성입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내일 PT 시간에 할 이야기지만, 어떤 독자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가 무엇이며, 노상 '죄인, 죄인' 하는데 도대체 내가, 우리가, 인간이 무슨 죄를 지었냐고 물으셨어요.
원죄란 바로 자기중심성입니다. 여기서 모든 죄가 파생되지요. 자기중심성이라는 원청의 죄를 개별 죄라는 하청으로 내려보내지요.
그렇게 해서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자기 임의로 하는 거지요. 먹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먹는 거지요. 먹어 놓고는 합리화하고 핑계대고 남탓하는 거지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거지요.
"하나님이 뭔데 먹으라 말라 해? 내 맘이지. 그리고 나만 먹었나? 쟤도 먹었는데." "쟤가 먹으라고 꼬드겨서 먹었지 내가 먼저 먹자고 한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야."
아담 이브 이래로 모든 인간은 한결같이 이런 식이죠. 이게 바로 원죄입니다. '아담'이란 말 자체가 '사람'이란 뜻이니, 아담의 죄는 곧 사람의 죄란 의미지요.
삶의 기준이 없고 행위의 잣대가 없기 때문에 내가 바로 가치 기준과 판단 잣대가 된 세상입니다. 그 모토가 바로 '내 삶의 주인은 나'지요. 인문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며, 저는 이제 그것이 지겹다 못해 역겨워진 사람입니다.
저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면서 지금껏 잘 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잘 되기는 고사하고 '폭망'했습니다. 내 삶의 주인 자리를 기꺼이 내어 놓을 때 76장 마지막 구절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단하고 강한 것은 아래에 놓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로 간다.
단단하고 강한 것은 자아 극치적 모습입니다. 자기가 주인인 삶입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자아가 힘이 다 빠져서, 심령이 가난한 자, 온유한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나뭇단을 쌓을 때 단단하고 강한 가지를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여리고 가는 가지를 올리는 것처럼, 궁극의 높임을 받고 진정한 복을 받는 것은 마음과 삶의 태도에서 부드럽고 약함을 유지할 때입니다.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리라. (마가복음 10;44)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는 낮추시리라. (사무엘하 22;28)
76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제 76 장
사람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지며
초목도 살아 있으면
보드랍고 연하지만
죽으면 마르고 뻣뻣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현상이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현상이다.
군대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부러진다.
단단하고 강한 것은 아래에 놓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로 간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20] 하루보듬 도덕경(76/3장) 원죄란 무엇인가?|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