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것을 두고 운명으로 엮인다고 하는 거겠지요. 스위스 안락사 현장을 다녀온 후, 그 현장 체험기를 낸 후 점점 더 깊숙이 안락사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안락사에 빠져든다'고 하니 마치 제가 곧 안락사를 할 것처럼 들리실 것 같네요.
가수들이 자기가 부른 노래 가사대로 생을 마감한다거나, 배우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 줄거리대로 운명이 끌려가는 경우를 이따금 봅니다. 그와 같이 안락사는 앞으로 쓸 제 글의 좌표를 '삶과 죽음'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이 작가는 죽음에서 한 발 더 나가 '죽음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셨듯이 저도 이제는 죽음을 쓰려고 합니다. 죽음을 쓰면서 살다가 죽음을 쓰면서 죽으려고요. 죽음 중에서도 안락사를 쓰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저자김지수,이어령출판열림원발매2021.10.28.
저는 안락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안락사에 관한 두 번째 책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이건 마치 불고기를 이미 만들어 먹고 나서 되짚어 불고기 요리법을 쓰는 느낌입니다. 체험이 먼저 있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이론서를 쓴다는 의미에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안락사에 관한 책 백 권을 읽은 사람보다 직접 현장을 보고 온 사람이 훨씬 할 말이 많겠지만, 현장 체험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체험을 하고 온 사람으로서 안락사에 관한 책을 계속해서 쓰는 것은 안락사 논쟁이 불붙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도리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잘된 거야감독프랑소와 오종출연소피 마르소, 앙드레 뒤솔리에, 제랄딘 팔리아스, 샬롯 램플링개봉2022. 09. 07.
영화도 찾아서 보고 있습니다. 제 책이 영화로 만들어질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서. 최근에는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안락사 영화 <다 잘된 거야>를 봤습니다.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제가 겪은 현장이 훨씬 드라마틱했기 때문이지요.
독자 중에 심장내과 전문의가 계십니다. <영화 속의 생명이야기> 등 영화로 인생을 톺아보는 책을 여러 권 내신 장경식 교수님이시죠. 심장 전문의면서 영화 전문가로도 사시는 멋진 분! 최근에 내신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으로>에 안락사에 관한 영화가 여러 편 소개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한 편씩 보려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으로저자장경식출판예지발매2022.08.15.
그런데 안락사에 관한 책이든, 영화든 어차피 모두 안락사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내용이니 일일이 찾아볼 필요가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안락사; 기. 승. 전. 찬성"일테니까요.
정신과 의사면서 영성가인 <아직도 가야할 길>을 쓴 M. 스캇 펙은 불교도였다가 기독교도로의 개종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후 인간심리와 기독교 신앙의 통합을 지향하는 글쓰기에 전 생을 걸었지요. 그가 현대인에게 던지는 자살과 안락사에 관한 메시지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를 여러 차례 읽으면서 저는 용기와 지지를 얻었습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저자모건 스콧 펙출판율리시즈발매2013.02.05.
"거칠고 파편적인 리뷰들이 올라와, 특히 제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스위스에서 돌아가신 분의 죽음을 폄훼하고 존엄사를 훼손하는 만행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따지고 드는 데는 아연했지요... 저도 기독교인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강권적으로 찾아오신 것을 어쩝니까... "
엊그제 제 책을 읽고 이메일로 독후감을 보내주신 낯 모르는 독자와 나눈 대화입니다. 저는 독자들에게 제 생각에 동의해 줄 것을 강요하거나 구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게 될 일도 아니고요. 저는 그저 제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갈 뿐입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저자신아연출판책과나무발매2022.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