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7/1장)
저는 어제 종일 글을 썼습니다. 월간지 <브라보마이라이프>에 사랑이야기 대신 써 주는 글 말이죠. 이게 참, 사람 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 같아도 자세히, 가까이 들여다보면 얼마나 다양하고 다른지, 특히 사랑의 궤적은 삶의 궤적과 참 많이 닮았다는 걸 느낍니다. 삶의 얼굴만큼 사랑도 각각이니까요.
사람은 사랑을 통해 가장 많이 배웁니다. 폭풍 성장을 합니다. 젊었을 때는 이성간의 사랑이 삶을 좌지우지하지요. 스토킹 또한 잘못된 사랑, 흉측한 본능의 해악인 거잖아요. 무섭고도 강렬한 역동이 휘몰아치는.
어제는 학창 시절 통학길에서 늘 마주치던 남학생과의 아련한 추억 한 자락을 제게 꺼내 보여주신 50대 초반의 독자가 있었습니다. 계절과 잘 어울리는 아련함을 따라 저도 잠시 시간 여행을 했지요.
저야 그런 추억이 있을 리가 없죠.^^ 저는 늘 생각에 빠져 있었으니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심각한 ‘생각쟁이’가 되었더랬지요. 돌이켜 보면 10대 중반부터 설익은 철학적 사색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걸 '소질의 발견'으로 여깁니다. 저의 생각하는 소질. 그렇게 생각쟁이에서 말쟁이, 글쟁이가 되어 갔던 거지요.
저는 늘 나이에 맞지 않는 생각들로 빗나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에서야 과녁을 제대로 인지했습니다. 얼마나 복된 일인지요! 나이 60, 생의 반환점을 돌면서 삶의 좌표가 명료해졌다는 것,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까요.
제게 그것은 가슴팍에,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아로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과녁의 정중앙을 향해 삶의 화살을 날리는 것입니다. 아직 과녁이 낯설어 화살의 대부분은 삐뚤빼뚤 날아가지만, 중도에 고꾸라지기도 하지만, 의도와 달리 엉뚱한 곳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 최선적으로 맞춰야 할 곳은 명확합니다.
오늘 노자도 77장에서 활쏘기를 비유하여 삶의 중심과녁을 명중시키는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하재열 작가의 '심상'
하늘의 도는
마치 활에 시위를 메우는 것과 같다
시위가 높으면 내려 누르고
낮으면 치켜 올린다
남는 것은 덜고
모자라면 보탠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쪽을 채우는데
인간의 도는
모자라는 것에서 덜어내어
남는 쪽에 갖다 바친다.
그 균형을 맞출 자 누구인가?
오직 도를 지닌 자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도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며
자신의 현명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느낌 오는지요? 내일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