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8/2장)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지난 금요일부터 어젯밤 늦게까지 좀 분주했습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를 낸 후 갈 곳도, 오라는 곳도 많아져서 입니다. 한국일보에 인터뷰 기사가 나갔고 예의 좋은 소리(댓글)를 못 들었으며, 오늘 오전에는 제 책을 주제로 박사 학위 관련한 논문을 쓰려는 독자와 전화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에 초대를 받았고 다음 주에는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합니다. 이 작은 책이 남은 제 생의 이정표가 되어 발길을 끌어갑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세상과 마주하게 합니다.
책을 냈으면 그만이지, 그것도 고인을 배신하는 결론으로 냈으면 미안해서라도 국으로 가만히 있을 일이지, 왜 여기저기 신문, 잡지에 떠들고 나대며 설치냐, 책 팔려는 수작으로 고인을 더 이상 욕보이지 말라는 투의 화살이 저를 가장 아프게 찌릅니다. 조력자살 찬성 쪽에서 날리는 독화살이지요.
인터뷰라는 건 '아 다르고 어 다를 수밖에' 없어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쓰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내 딴엔 일껏 찰떡을 빚어줬더니 개떡처럼 글을 써버리는 경우도 있어서 기자로 인해 겪지 않아도 되는 덤터기와 수모를 감수할 각오까지 해야 하니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제 본래의 뜻이 굴절되고 왜곡되는 일은 왜 없겠습니까. 그렇다 해도 저는 일체 함구합니다. 구더기가 무서워도 장을 담궈야 하는 것처럼 인터뷰에 응한 이상 어쩔 수 없는 불순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 제게 오늘 도덕경 78장이 위로를 줍니다.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는 것 중에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올여름 혹독한 수해로 물이 물로 보이지 않고, 물이 준 상처로 인해 물보다 단단하고 강한 것이 없는 것 같아, 물의 위력과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했지요.
하지만 평상시에는 물처럼 부드럽고 약해 보이는 것이 없지요. 물은 높은 곳, 낮은 곳 가림없이 가고, 어느 모양의 그릇에도 저항없이 담기며, 더러운 것을 묵묵히 씻어내고, 파인 곳을 채워주며, 흘러가다 장애물을 만나도 슥~~ 돌아서 갈 뿐, 왜 내 앞을 가로막냐며 맞대거리하지 않지요. 그러면서 낮은 데로, 낮은 데로 겸손히 흘러가지요.
노자는 물의 그러한 성질을 부드럽고 약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고, 아무리 강하고 단단한 것도 결국 물에게는 지지요.
저는 물의 속성, 물의 진리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뚫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뭘 뚫고 나가려 하냐고요? 죽음의 어둠을 요.
저는 제 이 여리고 작은 책이 노자가 통찰한 물과 같이 이 땅의 사망 권세를 누르고 생명의 복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물의 속성과 아울러 물의 본성을 닮으려고 합니다. 물의 본성이 어쨌길래? 그건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SBS기사 뉴스에 실린 글을 공유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단풍구경도 좋지만, 내면의 뜨락을 살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는 오늘, 기사에 소개된 <나를 죽여줘>라는 영화를 보러갈까 합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942120
제 78 장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는 것 중에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
그 이유는
물의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을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하기를
나라의 수치를 감당할 수 있는 이를
나라의 주인이라 하였고
나라의 재앙을 감당할 수 있는 이를
천하의 왕이라고 하였으니
바른 말은 마치 거꾸로 하는 것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