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9/4장)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좀 부대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지혜와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는 것으로 제 자신을 위로합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또다시 오뚝이처럼, 잡초처럼 생의 의지를 일으켜 세워야 하겠지요.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음에, 글을 쓰려고 같은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평생 불행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받아안으셨던 6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당신 같은 사람은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겠다는 말씀을 한 번 하셨습니다. 성경 속 욥의 탄식처럼. 어머니는 '너는 글을 쓸 수 있어서 좋겠다'며 저를 부러워하셨지요. 고난의 쓰나미 속에서 당신의 인생을 글로 표현이라도 하며 견디고 싶으셨던가 봅니다.
그렇군요. 저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군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고난에 꺾이지 않습니다. 고난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객관화할 수 있습니다. 고난에 대응할 무기를 내장하고 있으니까요.
오늘 마칠 도덕경 79장 말씀도 제게 위로를 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늘의 도를 따라 살라는.
하늘의 도는 편애가 없어
천도무친(天道無親)
언제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
상여선인(常與善人)
천도무친(天道無親), 도덕경에서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도는 특별히 어떤 사람과 친한 일도 없고, 누구를 편애하는 일도 없다고 하고선, 그러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니 모순된 말 같지요? 풀이하기 쉽지 않네요.
하늘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햇볕과 비를 고루 내리지요. 그런데 검정 우산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 봐요. 햇볕을 쬘 수 없겠지요. 바가지를 거꾸로 들고 있다고 생각해 봐요. 빗물을 받을 수 없겠지요.
여기서 '착한 사람'이란 우산을 쓰지 않고 햇볕 아래 그대로 서 있는 사람, 바가지를 제대로 들고 빗물을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봐야 겠지요. 즉, 도를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하는 거지요.
도를 따라 살면 억지로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겠지요. 꼬이고 답답한 일도, 아프고 아린 일도 언젠가는 순리대로, 흐름대로 풀어질 것입니다. 성경 말씀, '잘못된 듯 보이는 일, 불행으로 여겨지는 일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의미로도 들립니다.
79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전흥수
제 79 장
큰 원한이 있으면
화해를 해도
반드시 그 찌꺼기를 남기니
어찌 잘 했다고 할 수 있으랴.
그래서 성인은
빚문서(좌계)를 가지고 있지만
독촉은 하지 않는다.
덕이 있는 자는 문서를 지니고만 있고
덕이 없는 자는 기어이 빚을 받아내고야 만다.
하늘의 도는 편애가 없어
언제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