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말빨이 달려서가 아니다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49] 하루보듬 도덕경(81/2장)

by 신아연

81장, 다시 첫 단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참말, 진리를 전하는 세 가지 자세라고 할까요?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


첫째, 신언불미(信言不美) 미언불신(美言不信), 참말, 진리는 듣기에 아름답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말에 분명한 알맹이가 있다면 좀 투박하고 촌스럽게 말한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날까요? 말의 내용에 자신이 있다면 굳이 세련되게, 매끄럽게, 귀에 달콤하게 하려고 애 쓸 필요가 없겠지요. 현란한 말장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둘째, 선자불변(善者不辯) 변자불선(辯者不善), 내 말이 옳다, 네 말이 그르다고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가 가장 고질이지요. 이념 대립, 세대 갈등, 지역 나눔, 젠더 소모전 등으로 다툼이 끊이질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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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llyCantabile, 출처 Pixabay



어제도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 둘이 "윤이 잘못 하니까 잘못 한다는 거지,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딨냐고요?" 라며 시작을 했습니다. 언쟁의 불꽃이 '파바박' 일었습니다. 한 사람이 현 정부를 비판하는 다른 사람을 빨갱이라고 몰아부치던 참이었나 봅니다. '듣는 빨갱이 딸(저 말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테지요)' 불편하려던 차에 다행히 거기서 언쟁은 끝났습니다.


이런 식인 거지요. 저는 노자를 배운 후 한 가지는 실천합니다. 논쟁하지 않는 거지요. '내 입장에서는 이렇지만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며 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나보다 상대의 입장에 먼저 서는 훈련을 합니다.


말로 이기지 못해서 논쟁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말빨'이나 논리가 달려서도 아닙니다. 그냥 안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자체가 옳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이미 여러 사람 상처줬으니까요. 그리고 그 결과가 참혹했으니까요.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셋째, 아는 사람은 뭐고 박식한 사람은 뭔가요? 같은 말 아닌가요? 헷갈리네요. 이게 간단한 내용이 아니라서 내일 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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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제 81 장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남에게 베풀지만

그럴수록 더욱 많이 있게 되고

있는 것을 남에게 내어주되

그럴수록 더욱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할 뿐 해롭지 않고

성인의 도는

베풀되 다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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