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대로 봤다가는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50] 하루보듬 도덕경(81/3장)

by 신아연

어제 성경 시편에서 이런 말씀을 만났습니다.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 같이 독한 말을 겨누고"


누가 그러냐고요? 악을 꾀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어제 살핀 언쟁, 시비, 변론하는 자의 모습이지요.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고 했지요. 저는 어느 시점에서 이거 하나는 안 하고 살기로 다짐, 실천하고 있다고 어제 말씀드렸고요. 그 시점은 실상 크리스천이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제게는 도덕경과 성경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사람이 변하는 강한 동기가 되고 있는 거지요. 성경과 도덕경은 인류에 가장 영향을 끼치고 있는 두 책이지요.


'혀와 말에 재갈을 물리고' 선한 사람이 되겠다는 게 저의 신조입니다.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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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작가의 '심상'


다음 구절 보지요. 지자부박(知者不博), 박자부지(博者不知), (진리를)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지식이 많은) 박식한 사람은 (진리를) 알지 못한다.


세상사 이치, 진리에 다다르는 앎은 박식, 박학 등 지식이 많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오히려 거꾸로지요. 무지, 무식한 촌노인이 삶의 지혜와 혜안 면에선 오히려 밝을 때처럼.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지만 도의 길은 하루하루 덜어내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지식, 상식, 선입관, 편견 등을 내려놓을 때 그 빈 공간에 직관과 통찰이 작용하여 대상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박자(博者)가 아닌 지자(知者)가 되는 것이죠.


제가 언쟁, 논쟁하지 않겠다는 이유도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내 앞의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지요. 시비에 휘말리면 그때부터는 '내가 보고 싶은대로' 상대를 보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라는 둥,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는 둥,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둥 고정 관념의 프레임을 씌우게 되는 거지요.


다음주에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81 장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남에게 베풀지만

그럴수록 더욱 많이 있게 되고

있는 것을 남에게 내어주되

그럴수록 더욱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할 뿐 해롭지 않고

성인의 도는

베풀되 다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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