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면 '반드시'

by 신아연

노자 없이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함곡관(세속과 작별하며 노자가 통과한 국경 문) 떠난 노자를 다시 불러 세울 수도 없고, 밥을 지으려는데 쌀이 떨어진 느낌입니다. 오늘은 무엇으로 영혼의 혼밥을 지을까요.

어제 저는 뜻하지 않게 일을 얻게 되었습니다(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왔더니 그와 관련한(글과 관련한) 일을 제게 맡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따금 흥부가 제비 다리 고쳐주고 받은 박씨 체험을 합니다. 이번 일도 그랬습니다. 대가 바라지 않은 일에 뜻하지 않은 대가를 받은 거지요.

오늘은 노자가 떠난 자리에 공자 말씀으로 밥을 짓겠습니다.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제 깜냥에 무슨 대단한 덕이 있겠습니까만, 작고 소박한 '맘짓'도 진심을 담으면 그게 덕인 거지요. 그 진심이 모아모아지면, 다른 말로 덕을 충실히 키워가면 반드시 알아주는 사람,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지요.

흙을 쌓고 쌓으면 산이 되는데, 산을 이루고 나면 바람과 비가 거기서 생겨나고, 물을 모으고 모으면 연못을 이루게 되는데, 일단 연못이 생기면 저절로 물고기가 살게 되며, 진심을 다하여 선행하기를 부단히 노력하면, 그렇게 해서 덕이 점차점차 높아지면 신령한 통찰력, 성인의 마음이 생긴다는 순자 말씀과도 통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적토성산(積土成山)이며, 적수성연(積水成淵)이자, 적선성덕(積善成德)입니다.

부단히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바람과 비가 생겨나고, '반드시' 물고기가 찾아들 것이며, '반드시' 높은 통찰력의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니 앞엣 것만 정성을 다해 하자고요, 우리. 그렇게만 하면 뒤의 결과는 저절로 따라온다니 신경쓰지 말고요.

저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이후 이것이 쉬워졌습니다. 쉬워졌다는 표현보다 '구체적으로 잡힌다'고 하는 게 옳겠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도움을 청할 때나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예수님이라면 지금 어떻게 하실까'라고 제 마음에 묻는 거지요. 막연히 '적토성산, 적수성연, 적선성덕하자'는 것보다 얼마나 구체적인지 몰라요.

가령 어떤 사람을 도와주는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속옷까지 벗어주라고 하실 테지요. 그러나 그렇게까지는 못했다고 쳐봐요. 그러니 겉옷 벗어준 것 가지고 적어도 생색내지는 못할 것 아닌가요? 이런 마음일 때 덕이 쌓이는 거지요.

내일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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