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장자(11)
‘수레바퀴에 빠진 물고기’와 ‘권력자의 치질 빨기’를 이야기한 후 몇몇 분이 <장자>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인 줄 몰랐다며 이참에 장자를 본격적으로 읽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장자>의 묘미를 아신 거지요.
우리는 '노자, 장자, 공자, 맹자'하면 무조건 딱딱하고 어렵고 고리타분하고, 내 삶과는 아무 상관없고 등등 외면만 하려고 들지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공부하는 걸 아주 싫어하고,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는 사람인데 이 책들은 오히려 술술 익히더라는 거죠. 왜 그런 줄 아세요? 바로 제 삶과 직결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삶에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입니다. 상식에 비춘다면 좀 이상한 사람이지요. 저와 깊이 대화해 본 사람들은 저를 알지요.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저는 제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동양 고전이 거울이 되어 주었습니다.
내 삶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것은 오히려 서양철학서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실제로 있지 않은 일, 그러니까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논리 게임, 언어 유희를 즐기고 관념을 갖고 노는 사람들이죠. 읽고 있으면 머리에 쥐가 나지요.
그런데 동양사상은 삶에 직결되어 있어요. 현실에 당면한 문제를 풀고자 골똘히 생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한 산물들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원래 뭐든 실용적이잖아요.
특히 <장자>가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는 서술 방식 때문입니다. 이솝우화처럼 우화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지요.
당시는 난세입니다. 입 한 번 잘못 열었다가는 목숨 보전하기도 힘든 시대였지요. 그러니 에둘러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가상의 이야기를 지어내어 그 속에 진의를 담아야 했지요.
그런데 효과는 더 좋았지요. 가령 거짓말 하지 말라고 백 번 말하는 것 보다 피노키오 이야기 한 번 들려주면 그대로 끝나듯이. 이렇게 우화를 빌려서 하는 말을 ‘우언(寓言)’이라고 하는데 <장자>는 90%가 우언으로 되어 있습니다.
<장자> 이전의 책은 죄다 바로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지요. <논어>도 ‘자왈(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지금 우리야 우화 형식의 글이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매우 독특하고 전에 없던 서술 방식이었다고 해요. 일단 직접적 형식의 글보다 다채롭고 생동감이 있잖아요. 오늘날 문학이 태동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우언은 또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객관적으로 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왜냐하면 남의 말하듯 하니까요. 내 장점은 내가 말하는 것보다 남이 말해주는 게 더 먹히지요. 자기 입으로 자기 자랑해 봤자 ‘관종’소리만 듣잖아요.
내 주장 역시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객관적 형식을 빌려서 슬쩍 끼워 넣을 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데, 그 객관적 형식이 바로 우화, 우언이라는 겁니다.
오늘 <장자>에서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장자>는 90%가 우언의 형식으로 쓰인 글이라는 것,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78] 왕따 장자(11) 관종이 우스운 이유|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