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장자(12)
여러분들 아침마다, 아니 하루 종일 카톡으로 뭔가를 주고받으시지요? 저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만(그래서 귀찮다며 이런 거 보내지 말라고 초장에 딱 끊어버리는 분들도 계시죠ㅠㅠ. 여러분들은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 저처럼 직접 글을 써서 보내는 경우는 드물 것 같고, 대부분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지요.
가령 실의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를 써보내고, 이해인 수녀의 시, 김형석 교수의 100세 삶의 철학, 박완서 작가의 수필, 세계 위인들의 어록도 나눕니다. 문제는 잘못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건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는 거지요. 혼란하고 혼탁한 카톡 세계의 꼴불견이지요.
최악은 어떤 시나 글을 인용하면서 본인이 첨삭하거나 덧붙여 써서 보내는 건데요, 끔찍하기 이를 데없는 폭력이지요. 원작자가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면 더욱.
그걸 어떻게 다 아냐고요? 물론 다 알지는 못하지만 느낌으로 대략 알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이렇게 말했을 리가 없다, 이건 그 작가 스타일이 아니다, 이 글은 자기 말에 유명한 사람의 이름만 올려 붙인 도용이란 정도는 안단 뜻이지요. 제가 세상 모든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아는 게 아니라.
그래서 이런 글을 받을 때면 민망하거나 실소하거나 불쾌할 때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왜 그렇게 할까요? 왜 남의 말을 인용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할까요? 남도 그냥 남이 아니라 유명한 사람, 권위 있는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이나 글을 인용하는 까닭이 뭘까요? 저는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데도 인터넷에서 이따금 제 글이 인용된 걸 볼 때가 있습니다만. ㅎㅎ
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어서죠. 내가 말하면 안 먹히니까, 말빨이 안 서니까 나보다 잘난 사람의 말을 빌려 오는 거지요. 이런 화법을 '중언(重言)'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 카톡으로 중언을 하고 있는 거지요.
<장자>에도 중언이 많습니다. 어제 <장자>는 우언이 90%라 했지요? 우언이 뭐라 그랬죠? 이솝우화처럼 비유나 은유로 말하는 법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장자>는 그 90% 우언 중에 중언이 70%를 차지합니다. 우화식 글 안에서 70%는 '누가 이런 말을 했다'는 방식(중언)으로 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어제, 오늘 '<장자>는 우언과 중언으로 서술되어 있다'를 배웠습니다. 천생 말쟁이, 천재 말꾼 장자의 화법을 배우면 우리도 말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실력에 매번 무릎을 칠 우화를 지어낼 수는 없고, 중언은 즐겨 사용할 수 있지만 다만 출처나 원작자를 확인하고 해야겠습니다. 엉터리 중언을 했다간 효과적 전달은 고사하고, 쪽 팔리고 망신스럽잖아요.
우언, 중언에 이어 치언(巵言)이란 게 있습니다. '술잔 치(巵)'자, 치언은 또 뭘까요? 술 취해서 하는 말일까요? 다음주에 살펴보죠.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79] 왕따 장자(12) 카톡 중언을 하는 이유|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