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장자(18)
어제 따듯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마운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늘 과분한 사랑과 관심과 배려를 받습니다. 젊은 사람도 그러고, 연세 드신 분도 그러고, 남자도 그러고, 여자도 그럽니다. 저한테는 모두 관대합니다.
사람들은 저의 '오(吾)'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저의 '아(我)'는 별 볼일 없으니까요. 젊고 예쁜 여자도 아니고, 돈이 있는 것도, 가정이 있는 것도, 유명한 작가도 아니잖아요. 아(我)로서의 저와는 친해봤자죠. 만날 때마다 밥 사줘야 해서 돈만 축나죠. ㅎㅎ
성공보다 승리라고 했지요? 아(我)가 원하는 것이 성공이라면, 오(吾)는 승리하길 원합니다.
<장자>는 '승리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세상이란 우물 안에서 성공에 혈안되고 쾌락에 몸 던지는 '아(我)들'을 엿먹이고 드넓은 '오(吾)'의 바다를 유영하며 내쪼대로 살아가는 자유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을 유유히 왕따 시키며 창공을 나르는 이야기입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과연 오(吾)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몹시 궁금하네요." 라고 어제 글에 댓글 주신 분, 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네, '진짜 나'로 살아가는 거지요. 그 '진짜 나'가 어떤 나인지 궁금하다는 말씀일 테지만.
장자는 어떤 진짜 나로 살았는지 살펴보면 나의 진짜 나를 찾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가령 이런 거지요. 수레 백 대의 하사품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벼슬아치한테 치질 걸린 왕의 똥꼬라도 빨아줫냐며 쫑코를 주는 장면 같은 거. 장자에게는 출세하고 성공하는 아(我)의 일 따위엔 관심이 없었던 거죠.
수레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또 해 보죠. 수레를 하사받는 것은 용의 턱밑에서 구슬을 얻는 것과 같다는. 대접 받은 만큼 험한 꼴을 볼 수도 있다는. 어쩌면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를지도 모른다는.
어떤 사람이 송나라 왕한테서 수레를 열 대나 하사받았다고 장자에게 자랑하자, 장자가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우언이지요).
어떤 가난한 이의 아들이 깊은 물 속에 들어가 구슬 천금을 주워왔다네. 하지만 아비가 이렇게 말했지. "돌을 가져다 구슬을 부숴버려라. 천금의 구슬이라면 필시 깊은 물 속에 사는 용의 턱밑에 있었던 걸 거다. 네가 구슬을 가져왔다면 용이 잠들어 있을 때였을 거야. 만약 용이 깨어났다면 잡아 먹혀서 뼈도 못 추렸겠지."
송나라 왕은 용에 비길 수 없이 포악하다네. 자네가 수레를 받았다면 아마도 송나라 왕이 잠든 때 였겠지. 만약 왕이 깨어났다면 자네는 아예 가루가 되었을 걸!- 완샤 <장자> 일빛
오상아(吾喪我), 내(吾)가 나(我)를 장사지낼 수만 있다면 타인과의 불통의 고통도, 인정욕구에 목 매는 일도, 경쟁으로 안달하는 것도, 밤낮없는 걱정근심과 초라하고 비참한 현실도 모두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사 받은 수레 따위를 자랑할 일도 없을 테고요. 아(我)로 인한 평생의 끄달림, 시달림을 일순간에 벗는 거지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