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동행일기(5)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란 말이 있다.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으나(해보려고 발버둥쳤으나) 그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신다. 마치 구조요원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 제 풀에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건져올리는 것처럼. 어떻게든 살려고 허우적거리고 버둥댈 때는 아예 한 대 쳐서 정신을 잠시 잃게 만든다지 않나.
그럼에도 누군가는 구조되고 누군가는 익사한다. 하나님이 던져 주시는 구명 튜브를 잡지 못한 탓이다. 절망의 끝에서 누군가는 하나님을 만나고 누군가는 자살한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한 키에르케고르의 말대로. 아플 때 누군가는 바로 병원을 가고 누군가는 버티다 치료 시기를 놓치고 죽고 만다. 인류 최고의 명의를 옆에 두고도.
내 지인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나처럼 아파보지 않아서다. 나처럼 고통스러운 적이 없어서다. 나처럼 절박하고 나처럼 외롭지 않아서다. 시시각각 죽음의 심연으로 추락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다. 말하자면 아직 살 만하다는 거다. 그러기에 나처럼 마음과 영혼의 수술대에 오를 일이 없는 것이다.
동병상련이라고 그래서 나는 나처럼 아픈 사람들과 주로 대화한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인간의 끝에 다달아 본 사람들끼리 하나님의 시작을 경험하고 치유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아프지도 않은 사람더러 병원을 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인들에게 전도가 안되는 이유다. 하지만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지 않나. 안 아파도 검진 차, 예방 차 병원을 간다면 좋으련만.
하기야 육체의 병은 그렇게 해서 발견할 수 있지만 마음의 병은 그런다고 해도 좀체 찾아지지 않는다. 마음의 병원, 즉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내가 문제 많은 사람이구나, 죄인이구나, 영혼에 중병이 들었구나 하고 바로 진단이 내려지질 않는다는 뜻이다. 수 십년을 교회 문턱만 밟고 다녔던 과거의 나처럼.
사람은 스스로 병이 들었다는 자각이 있을 때에야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가망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 내가 크리스천이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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