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편은 없다

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4

by 신아연


어제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지옥 같다는 분의 절규에 가까운 메시지를 받았다. ‘내 편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남들은 형형색색의 가면을 쓰고 잘도 살아가는데 자신은 단지 어둠 속에 칩거하며, 프로스트가 묘사한 눈 내리는 밤의 ‘그 숲’을 동경하게 된다고 했다. 죽고 싶다는 뜻이다.


모질게 들리겠지만 ‘내 편은 없다, 단 한 명도 없다.’고 그분께 말하고 싶다. 더구나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는 내 편이 더욱이나 없다고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는 ‘내 편 따위는 필요 없다.’고까지 단언하고 싶다. 이 사실을 직시한다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갈 수 있다.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을 오직 혼자 통과한 후에야, 내 힘으로 일어서고 나서야 내 편이 생기고, 그때쯤 되면 내 편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어쭙잖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다(물론 그분도 모를 리 없겠지만). 지금 처해있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머리로만 말고 가슴으로, 온몸으로 받아들이라고. 나날이 나를 옥죄는 문제를 부정하고, 외면하고, 미뤄두지 말라고. 그럴수록 문제는 더 흉포한 얼굴을 하고 나를 덮치게 된다고.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옷 가방 두 개 걸머쥐고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살아갈 방도가 전혀 없었다. 무엇을 해서 내 입을 먹이며, 내 몸을 입히고 잠 잘 공간을 마련할지 대책 없이 한심했다. 그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내가 이런 지경에 처했구나.’라고 현실을 인정하는 것뿐이었다. 황량한 빈집 같은 황폐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면서 나는 차츰차츰 일어설 수 있었고, 그 현실 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한 가지씩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 과정에 무슨 내 편이 필요한가.


1623633076107.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