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미친 여자3
이 글은 5월 22일 호주 시드니에서 쓴 글입니다.
어제 글에서 영적 불임과 유산, 사산을 얘기했는데, 저는 노산에다 난산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 헛 살고 나이 60에서야 예수의 영으로 영 갈이, 마음 갈이를 했으니 노산이요, 크리스천이 되기까지 매 맞는 아내로 살았으니 난산인 거지요.
물론 예수를 만나기 위해 매 맞는 아내로 살아야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모진 상황을 예수 만남으로써 끝내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내가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었는데 너는 어쩌자고 그런 비참함 속에 스스로를 포기한 채 죽음을 자초하고 있었냐고 통탄하시는 예수님을 오늘 새벽 또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어떻게 살았건 예수만 만나면 되는 거니까, 삶이 모질수록 예수 만날 확률은 그만큼 더 높아지는 거니까, 그리하여 나는 예수를 만났으니까 ‘고생 끝에 예수’인 거죠.
생의 정답을 찾음으로써 삶이 완결 되었습니다. 제 앞 길이 그대로 훤히 밝아 보입니다.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이니까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하지만 정답은 있습니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저는 그런 허황된 말에 더는 속지 않습니다.
예수가 정답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그렇게 예수님 만나 새 생명을 얻고 나서 가장 먼저 든 마음이 전 남편을 용서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나의 영혼 구원을 위해, 영생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앉아서도 울고, 서서도 울고, 길을 가다가도 울고, 밥을 먹다가도 울고, 자다가도 울고 그렇게 지난 2년을 펑펑 울고, 지금 글을 쓰면서도 울고...
그렇게 예수님은 죽음으로 내게 새 생명을 주셨는데 나는 전 남편을 위해 죽지는 못하지만 내가 전 남편을 용서한다면 예수님이 일하셔서 그 사람의 영혼도 소생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 소망으로 지금 호주에 와 있는 거지요.
새벽 4시에 일어나 여기까지 글을 쓰고 새벽기도를 다녀왔습니다. 묵고 있는 집, 길 건너편에 3주 전, 한인교회가 이사를 왔습니다. 무단 횡단을 하면 3분 만에, 제대로 가면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오늘은 무단 횡단을 해서 3분 만에 갔습니다.^^ 그 교회 이전도 제게는 마치 하나님이 저를 위해 하신 배려인 것만 같아요.^^ 제가 호주에 있는 동안 기도하게 하시려고.
이 교회에 대해서는 별도로 간증을 하겠습니다. 제가 이러다 '천생 글쟁이'에서 ‘천생 간증쟁이’가 될 것 같아요. ㅎㅎ
예수님 만난 이후로 제게는 하루도 간증거리가 없는 날이 없으니까요. 특히 호주에 있는 지난 두 달은 간증이 퍼레이드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교회 문을 밀고 나오는 동시에 카톡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작가님이 한국에 갓 오셔서 우리 부부와 만났을 때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로, 길지는 않지만 한 동안 저도 그분과 비슷한 기도를 주님께 올렸습니다. 그분과 더불어 이 부족한 종의 기도를 함께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분’이란 어제 글에서 제가 크리스천 작가가 되도록 10년 간 기도하셨던 분을 말합니다. 어제 글을 보시고 같은 생각을 하며 기도했다는 분들이 몇 분 더 계셨습니다. 제가 크리스천 작가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 말이죠. 이러니 제가 예수님께 낚였다, 코뀄다는 소리를 하는 거 아닙니까. ^^
저를 사람 구하는 영혼으로 '낚기' 위해서, '글 낚시'의 달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여러 동역자들의 기도를 주님께서 동원하셨던 거지요.
오늘 그 말씀을 하신 분은 장로회신학대학 전 총장님이십니다. 호주를 방문하셨을 때 인사를 드린 인연에 기대어 제가 혼자 되어 한국으로 막 돌아갔을 때, 마음이 너무 힘들어 찾아뵈었더랬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나오셔서 제게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지요.
그 후 한, 두 번 더 뵙고는 총장님과의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제가 끊었습니다. 총장님은 그때 저를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고 했지만 제 마음이 열리질 않았던 거지요. 그때 총장님을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했더라면 지난 10년 간의 허송세월은 면했을 테지요. 미련하고 어리석기가 견줄 곳이 없네요, 제가...
그랬는데 2, 3일 전, 제 카톡에 총장님의 전화번호가 ’쑥‘ 하고 떠올랐습니다. 거의 10년 만에. 그때 마침 제가 아침 글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총장님께도 발송 버튼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그랬으니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고, 총장님도 얼결에 제 간증기를 읽지 않으실 수 없게 된 거지요. 하지만 이 일이 그저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며, 성령님의 세밀한 섭리라고 여깁니다.
총장님은 제 전 남편의 교회 은사이십니다. 전 남편이 10대였을 때부터 친분을 갖고 계시던. 그래서 시드니에 오셨을 때 인사를 드릴 수 있었던 거고요. 이혼 전 저희 내외가 총장님 내외 분과 함께 찍은 사진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제 가슴이 소망과 기대로 두근거립니다. 이제야말로 하나님께서 제 전 남편이 마음을 여는 일에 직접 개입하실 것 같은. 왜냐하면 총장님께서 위의 카톡과는 별도로 하신 말씀이 있거든요. 궁금하시죠?^^
오, 주여 도우소서,
부디 제 전 남편을 만나주소서!
다음 회에 계속
*사진은 전 남편이 일했던 노스 시드니 일대.
그 지역을 두루 다니며 전 남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