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글있다 2
오늘부터 몇 차례에 걸쳐 내가 어떻게해서 글쟁이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해 볼까 한다.
밥벌이 글, 그러니까 내게는 기사나 칼럼, 그밖에 인터뷰 글을 쓰는 일,- 말고 지금처럼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게 된 계기나 동기부여가 내 기억으론 두 번이 있었고, 나는 그 두 번의 기회를 잘 살렸다고 본다.
첫 번째 기회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을 때였다.
나는 그때 취업 공부도 안 해서 번듯한 곳에 취직도 못했고, 더군다나 결혼 후 호주로 이민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취직에 별다른 열의도 없었다. 이민을 갈 때까지 시간을 메우는 느낌으로 다닌 곳이 친척이 하던 작은 주간 신문사였다. 사무실이 양재동에 있었는데 양재역 부근이었던 같기도 하고... 하여간 30년도 더 지난 지금은 너무 변해서 도저히 못 찾겠다.
기자들이 하는 우스갯소리로, 기사만 안 쓰면 기자 해 먹기 딱 좋다는 말이 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분들이 있을까봐, 애들만 안 가르친다면 선생 해 먹기 딱 좋다, 불만 안 끄면 소방수가 장땡이지, 하는 농담을 내가 더 만들어 붙여본다.
기자들이란 밖에 나가서 대접 받고, 이런저런 사람들 만나고, 취재 명목으로 시간 자유롭고 등등, 갇혀 지내면서 늘상 쳇바퀴 같은 업무를 봐야 하는 일반 직장인에 비한다면 매력적인 직업인 게 사실이지만, 막상 기사를 쓰려면 그때부터가 고역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우스갯소리인 것이다. 그 직업 본연의 일만 안 하면 그 일이 할만하다니 이 아니 우스운가!
그런데 나는 딱 그 반대더라 이거였다. 밖에 나가서 취재하고 다니는 것이 고역이더라는 거다. 정확히는 취재 자체가 고역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내게는 즐겁지가 않더라는 거였다. 기자가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면 기사거리를 제대로 물고 올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이니 나는 유능한 기자가 되긴 애초에 글렀던 것이다. 여하간 내게는 일이 맞지 않았다. 그냥 책상 앞에 죽치고 앉아서 종일 뭔가를 끄적이라면 오히려 그게 적성에 맞더라는 거지. 어찌어찌 취재 보따리를 어렵사리 꾸려와서 책상 앞에 부려놓고, 기사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기자라는 사실이 그때서야 그나마 잠깐 만족감이 왔으니, 우스개에 비춘다면 내가 바로 본연의 업무에 능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무렵 어느 날, 편집국장에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회사를 그만 둬도 좋다는 각오로 말이다. 그랬더니 의외로 해결책이 쉽게 나와버렸다. 우리가 만들던 신문은 타블로이드 판형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첫 페이지는 책 표지처럼 멋있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장식이 되는데, 편집국장이 매주 들어갈 이미지를 선정을 해서 그 밑에 설명을 겸한 감상어린 에세이를 써서 내보냈다.
편집국장은 내게, 외근하기가 괴로우면 안에서 그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내근편집업무로 부서 이동이 된 것이다. 작은 회사에서 내근기자, 외근기자 나눌 것도 없었지만 여하튼 나는 특혜라면 특혜를 받은 것인데, 아침에 출근하면 눈도장만 찍고는 취재한답시고 온종일 밖으로 쏘다니기 일쑤인 동료들 눈에는 스스로 붙박이를 자처한 내가 측은하고 무능하게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안정적인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는데다 기자가 아닌 내가 원하는 글쟁이의 기초 훈련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내게는 분명 행운이었다. 물론 그때 나는 그것이 글쓰기 훈련이 시작된 나의 첫번 째 기회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