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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씻나락 까던 월요일

내 안에 글있다 3

by 신아연

그렇게 해서 내근이 시작되었다.


물론 신문의 얼굴 꾸미는 일만 하게 된 것은 아니고 여전히 취재도 나가고 기사도 썼지만 주업무가 그 일로 전환된 것이다. '신문의 얼굴을 꾸미는 일', 정말 그랬다. 신문을 읽어보거나, 펼쳐보거나, 들춰보지 않는다해도, 그냥 흘긋 지나쳐 본다고 해도, 뒤집어 놓지만 않으면 신문 1면은 언제나 눈에 띄기 마련이다.



신참 중에 신참인 내게 편집국장은 뭘 믿고 나에게 그 일을 맡겼을까. 겁이 덜컥났다. '적당히' 내지의 기사나 꾸리는 것이 훨씬 부담이 적고, 표 안 나게 묻어가는 일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지만 다시 돌이킬 수는 없었다. 회사 일이 무슨 생선 굽는 일이 아니지 않나. 누구 맘대로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을 것이냔 말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 새로운 고역이 시작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남들 다 겪는 월요병이었지만, 내 경우 병의 증세가 좀 남달랐으니 월요일 아침이면 사무실 내 책상에 엽서 크기의 사진이나 그림이 '날 잡아 잡수'하는 듯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레시피 없이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독창적 요리를 해야 했으니... 아... 그 두려움과 막막함이란...



구름만 한 가득 담긴 수채화, 시공을 가르는 한 줄기 빛, 망망 대해에 놓인 배 한 척, 강 이쪽과 저쪽을 잇는 다리, 들꽃 한 줌, 푸른 숲, 전깃줄 위의 참새, 산사의 기암괴석.. 한 주, 한 주 점입가경이었다. 글의 분량은 약 1천 자. 매주 한 편씩 1천 자 사진 혹은 그림 에세이를 써야 하는 셈이었다. 소설가 이문열 씨가 습작을 하면서(본인이 받았다는 건지, 제자들에게 그런 과제를 내 주었다는 건지 분명치 않다), 예를 들어 '돌'이라는 주제가 주어지면 돌에 관한 모든 것을, 그야말로 모든 것을 생각나는대로 전부 쓰게 하는 식으로 기초 훈련을 받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내가 했던 일이 그 훈련 방식과 흡사했던 것이다.



나는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동원해서라도 주어진 이미지를 묘사하는 1천 자를 써내야 했다. 표피적 감정에 호소하는 싸구려 감상문이든, 영혼을 두드리는 고상한 격문이든 찬밥, 더운 밥 가릴 일이 아니었다. 뭐가 됐든 뭔가를 써서 지면을 메워야 하니 매주 월요일이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 막막하고도 성가스럽고, 짜증나고도 두려운 일을 내게 떠맡겨 버린 게 아닌가 싶은, 편집국장을 원망하는 마음이 솟았을 정도이니...



여하간 그렇게 한 주 한 주가 흘러갔고 어쨌거나 지면을 채워나가게 되었으니 앙상한 팔 다리에 살이 붙듯, 어린 나무가 둥치를 키워 나가듯,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시작된 내 글에도 점차점차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 둘 때까지 나는 그 일을 잘 해냈고, 내 포토 에세이는 제법 인정을 받는 수준에 오르게 되었다. 동료들은 그때그때 휘발하고 마는 기사를 쓰고 있을 때 나는 모아둘 수 있는 내 글을 쓰고 있었다는 점에서 마치 회사에서 나만 적금 통장을 가진 것처럼 내밀한 기쁨과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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