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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감옥

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19

by 신아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어제 문득 든 생각이다. 막연한 듯도 하여, ‘나는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가. 무엇에 매여 있는가.’로 뒤집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더 이상 매 맞는 아내도 아니고, 현재는 자식으로 인한 걱정거리도 없다. 죽을 때까지 할 일도 있고, 아직은 몸도 건강하고, 주변과의 관계도 괜찮다. 이렇듯 외부적 조건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로운데 여전히 마음과 행동은 속박되고 구속되어 있던 옛 습관대로 움직이는 연유가 뭘까.


돌아가시기 전 치매에 걸렸던 아버지는 “이제 그만 감옥에서 나가고 싶다. 나를 제발 좀 빼내 달라.”고 어머니를 붙잡고 간청하셨다. “내일은 사형 집행이 있어 새벽 일찍 교도소에 가야한다.”고 하는가 하면,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은 자유의 몸이 되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어디든 마음대로 가실 수 있습니다.”라며 교도관 역할을 하시기도 했다.


시국 사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선친은 20년 20일을 복역한 후 가석방되셨지만, 치매로 인해 이번에는 기억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뒀던 것이다. 당신은 이제 자유의 몸이라고, 저기 열린 문으로 맘대로 나갈 수 있다고, 어머니가 아무리 깨우쳐드려도 무소용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생전에 몸의 자유는 얻었지만 마음의 감옥에서는 끝내 벗어나지 못하셨다. 나또한 그렇다. 나를 힘들게 하던 조건은 이미 거둬졌건만 마음은 여전히 모호하고 석연치 않으니.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 찾아온 자유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자유를 부르짖을 때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자유는 외부의 속박을 향해 하는 말이지만 독립은 당신 자신의 일이다. 자유를 얻고도 독립하지 못한다면 그건 노예나 다름없다.” 그래서 자유를 원하는 인간은 우선 독립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구거 『우울증 남자의 3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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