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본을 갑니다

by 신아연


제가 9월 2일에 일본을 갑니다.



올해가 관동대지진 그리고 관동대학살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떠나기 전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우리 독자 중에 방송 및 신문, 월간지, 인터넷 매체 기자들, 발행인들이 20명 정도 계시니 관심 가져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리 말씀드립니다.



"발행인님들, 기자님들, 종사하시는 매체에 '관동대학살 100년'에 관해 취재, 보도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100년이 되도록, 한 세기가 지나도록 진상규명은 커녕 일본측에서 사과 한 마디도 없었답니다. 증거를 인멸, 아예 없었던 일로 치부했답니다."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사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9분,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 지역에 진도 7.9급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하였다. 불운하게도 점심 식사 준비로 인해 거의 전 가정에서 불을 때고 있던 시간대라서 지진의 여파는 곧바로 대화재로 이어졌고, 도쿄, 요코하마 지역을 비롯한 관동 지역 일대가 궤멸되다시피 한 피해가 발생하였다. 사망자, 행방 불명자가 14만 명, 이재민 34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재난이었다.



재난의 혼란과 사회 불안 속에서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우물에 조선인이 독을 넣었다.'는 등의 근거도 없는 낭설이 확대되면서 자경단이나 경찰관에 의해서 조선인 6,600여명이 학살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사건 (일본사, 2009. 4. 20., 박석순, 손승철, 신동규, 서민교, 위키미디어 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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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 일대를 덮친 관동 대지진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아, 그런데 제가 왜 일본에 가냐고요? 추모제 취재 차 갑니다. 거긴 또 어떤 인연이 닿았냐고요?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에서 이 행사를 주관하기 때문이지요. 몇 번 말씀드렸듯이 저는 자생한방병원과 함께 씨알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거든요.



씨알재단과의 인연은 또 어떻게 맺어졌냐고요?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관동대학살에 초점을 맞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 기사를 꼭 읽어보시길 요. 내용이 좀 깁니다만, 마음 깊은 곳을 터치하는 전율과 감동이 있습니다. 나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한 살, 한 살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저는 자꾸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그러고 싶다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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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호 씨일재단 이사장






- 이번 추모제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 텐데 시민들로부터 후원 같은 것을 받고 있나요?



= 아직은 후원을 받지 않고 해 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변리사거든요. 변리사업을 하면서 모아둔 돈 가지고 재단을 설립해 꾸려가고 있어요. 사업이 더 활성화돼서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고 경제적인 지원도 해줄 수 있게 된다면 점점 더 힘을 받을 수 있겠지요. 그렇게 되면 활동도 훨씬 더 활발해질 겁니다.



- 지금도 변리사 일을 하고 계신가요?



= 아니요. 변리사라는 직업은 그냥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인데, 파트너십제로 사무실을 바꾸고 70살에 은퇴했지요. 지금은 은퇴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 그러면 재단 사업은 일종의 사회적 환원이 되겠네요.



= 내가 남들이 민주화를 위해서 감옥 가고 고문받고 하던 시절에 그냥 잘 살았잖아요. 속에 있던 아픈 그것을 갚자는 마음으로 은퇴 뒤에 사회적인 활동을 통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보답해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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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전들을 배경삼아 앉은 함인숙 목사



- 6,661명의 넋전 작업, 하루 이틀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네요.



= 아라카와 강변에 설치하기 위해 이 낚싯줄을 다 꿰어 가야 하고, 그것을 희생자 한 분 한 분을 실제로 대하는 마음으로 한 긴 작업이었어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일곱 사람이 3박 4일 동안 작업했어요. 모두 그냥 정신없이 밥 먹는 시간 빼놓고는 그 일만 하면서 바깥 출입도 않고 계속했어요.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 늦게까지 하는데 하나도 피곤하지도 않고. 힘들긴 했는데, 다음 날 일어날 때도 거뜬하게 일어나고, 그래서 다 마무리했을 때 우리는 이 넋전들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많이 줬다고 서로 얘기했습니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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