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51)
어제 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시고, 꽤 긴 글임에도 인내심 있게 읽고 소감을 나눠주셨습니다. 카톡 단체톡방, 카페, 블로그, 페이스 북 등 관여하는 SNS에 함인숙 목사와 김원호 씨알재단 이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선한 영향력'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새벽글과 여러분의 SNS가 선함 쓰임을 받았다는.
유난히 저는 그 기사에 끌림과 울림이 있었습니다.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과의 친분 탓만은 아니었습니다. 김이사장님과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영혼 닦음'을 합니다. 거짓 나를 벗고 '참나'로 살기 위한 자유와 평화의 작업이지요.
마치 제 운명에 또 다른 바늘코가 꿰어지는 순간이랄까요? 그리하여 이제부터 또 뭔가 유의미한 뜨개질이 시작되겠구나 하는 예감. '관동대학살 100주년 추모제'를 준비하는 두 분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후의 제 느낌이 그랬습니다. 9월 2일, 학살 현장을 직접 보고 오면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잡히겠지요.
제가 2021년 8월, 스위스 안락사 현장을 다녀올 때도 그랬습니다. 안락사(조력사)에 동행하기 전과 후로 내 삶이 달라지겠구나 하는 예감.
이번 주 토요일(26일)은 조력사로 돌아가신 분의 2주기입니다. 지난 2년 간 저는 '스위스 안락사를 직접 보고 온 사람'이란 꼬리표를 달고 살았습니다. 신문, 방송, 강연 등에서 그 체험을 나누고, 조력사를 희망하는 사람들과 제 책을 읽은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어느 덧 저의 정체성이 되어갑니다.
사람에게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가게 되어지는 길과 방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 속에 저마다 좌표와 등대가 있는 거지요. 제게는 그것을 하나님이 제시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진리를 따라가고 있다는 믿음.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이라면 당연히 선한 길이겠지요. 내 옆의 사람을 살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길.
하재열 작가의 '심상'
그럼에도 이따금 두려움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마음 속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는, 내가 나를 믿지 못하도록 휘젓는 근원 모를 두려움, 기독교 식으로 말하자면 사탄이 주는 두려움입니다.
"네 까짓 게 뭔데? 네 따위가 무슨 선을 행해? 네가 살아온 꼬라지를 봐라. 자신도, 가정도 못 지킨 주제에."
이런 사탄의 속살거림이 들릴 때면 저는 아래 말씀을 붙잡습니다.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베드로전서 3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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